회사가 나에게 준 것들
회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이렇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맨 처음 내가 입사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회사는 나에게 한없이 간절했던 곳이고 한없이 고마웠던 곳이다.
입사 전 취준생의 삶
걸어다니는 화석
대학교 4학년, 엄격하게 말하자면 대학교 6학년이었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교사 자격증을 위해 교육학 수업을 20학점 들으면서 학교를 10학기 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졸업생 신분이 되면 취업에 불리하기 때문에 일부러 수업을 하나 신청해서 11학기째 학교에 몸을 걸쳐 있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봤자 새파랗게 어린 스물다섯 가장 예뻤을 나이인데, 그때는 6년째 대학 캠퍼스에서 돌아다니는 나 자신이 걸어 다니는 화석처럼 생각되었다. 이유 없이 학교에 나가기가 미안해졌고, 후배들 보기가 부끄러웠고, 내가 얼마나 나이 들어 보일까 생각하며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다녔다.
입사 지원
쏟아져 내려오는 적을 조준해서 맞춰라!
학교에 몸을 반 걸친 채 취업 준비를 하던 때이다. 매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저 멀리서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처럼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회사가 요구하는 2-3주의 기간 동안 입사지원서 양식에 맞게 나를 어필해서 적어 내야 했다. 2-3주라는 시간이 꽤 긴 것 같지만 그런 회사가 동시에 50개쯤 쏟아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모두 제때 써내지 못하면 기회들을 모두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입사 선배는 미리부터 총을 장전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지원 양식을 구해서 그에 맞게 내용을 채워 놓은 다음 멀리서부터 내려오는 적을 하나씩 하나씩 조준해서 맞춰 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게임을 해 봐서 알겠지만 아무리 미리 준비해서 맞춘다 하더라도 너무 많으면 결국 못 맞추고 지나가는 것들은 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수십수백 개의 회사 중에 나에게 면접 기회를 주는 것은 겨우 한 두 개뿐이었다.
취준생의 마음
반 노숙인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반쯤 걸친 인간이 되어서 살아가던 시절, 지하철을 탈 때면 유독 마음이 우울 해졌다. 지하철에 사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보면 아주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자, 돈을 벌지 못하는 잉여인간. 그것이 되는 것은 조금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발을 삐끗해도 순식간에 미끄러져서 내가 처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찔해져 왔다. 추운 겨울날, 서울역에서 파카 하나로 차가운 바닥에 누워 추위를 버티는 돌아 누은 노숙자의 등을 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바닥의 찬 기운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노숙인들의 어디에도 토로할 수 없는 쓸쓸함과 그 끝 모를 어둠을 난생처음 함께 느꼈다.
내가 회사를 선택한 기준
인간적인 회사
입사 전부터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남들과 꽤 달랐다. 모두들 내로라하는 회사에 가려고 열을 올리던 그 시점 내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회사는 '되도록 시골스럽고 촌스러운 곳'이었다. 남들이 다 가는 강남, 여의도, 종로에 있는 삐까 뻔쩍한 빌딩에서 일해야 하는 회사들은 우선 탈락이었다. 대학교 때 새로 지은 번쩍거리는 건물에서 우수한 학생들과 공부를 할 때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날고 기는 동기들을 의식하느라 받는 스트레스가 공부 스트레스보다 컸던 것 같다. 고등학교 입시지옥에서 끝나지 않고 대학교에서도 이어지는 무한 경쟁에서 나는 지쳤고,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 모를 그 끝없는 경쟁의 링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그 당시는 현직자가 회사에 대해서 평을 해 주는 곳이 없었는데, 가끔 취업 준비생들의 커뮤니티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부분 분노와 자괴감이었지만 이 회사만큼은 2년 차 사원이 스스로 좋은 회사라고 인정을 했다. 그것을 보고 저 회사에 가야겠다 생각을 했다. (나중에 그 리뷰를 쓴 사람은 내가 직장 생활 동안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내가 들어간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갈 때 이미지는 마치 기차를 타고 시골 여행을 하러 가는 것 같았다. 내가 원했던 데로 회사는 인간적이었다. 사람들은 청소부 아주머니와도 따뜻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업무 부담도 크지 않아서 대부분 6시면 퇴근을 했다.
회사가 나에게 준 것들
경제적 자립을 시켜주다
회사는 나를 무직의 노숙자 신세를 면하게 해 주었다. 일할 기회가 주어졌고, 입사 당시 나는 아무 실력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입사 초반 내가 하는 일이란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아무리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절대로 독립하지 못한다. 회사는 나를 성인으로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내 힘으로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강제로 부지런해지는 삶
우리 회사는 8시까지 출근이었는데,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매일 출근을 하기 위해서 5시 반에 일어나는 것은 난 생 처음 겪어 보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캠핑을 가기 위해서 새벽같이 움직였던 경험을 포함하더라도 그때까지 내 평생 새벽 5시에 일어난 일은 손가락에 꼽았다. 강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취업 후 약 세 달간은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주말에도 잠만 잤다. 하지만 취업 준비 생활을 하면서 모든 생활 리듬이 깨져 있었던 터라 이것은 오히려 생체 리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 새로운 긴장감은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함께하는 공동체
회사는 마을 같았다. 팀원들은 언니 오빠 같았고, 다른 부서에서 가끔 일적으로 놀러오는(? 그때는 일하러 오는 것도 놀러오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삼촌 같았다. 부장님은 아빠, 상무님은 할아버지? 같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따뜻했고, 같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힘을 합쳐서 일한 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각자가 자기 공부를 했다. 숙제는 혼자 하는 것이고 남이 도와줄 수가 없다. 공부 방법을 모르는 아이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아지지 않는다. 근데 회사는 전교 1등과 꼴등이 함께 숙제를 풀어 나간다. 내가 중간에 막혀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면서 함께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정서적 안정, 신체적 리듬을 찾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자립하여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11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회사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오랜 시간 동안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회사를 다닌 덕에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었다. 회사가 아니라면 만나 볼 수 없었을 굵직한 회사의 중요한 사람들과 만나고. 내 돈 내고는 평생 한번 갈까 말까 한 호화로운 호텔에서 론칭 행사를 진행하는 경험을 했다. 유명 연예인들을 촬영장에서 만나고, 업계에서 알아주는 촬영 감독,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회식 때는 그전에는 사 먹을 수 없었던 고급 횟집과 고깃집에 가는 것도 가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물론 회사 실적이 떨어지고 나서부터는 흔치 않은 일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회사에 있으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배울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보고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다. 그것은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 놓은 노하우를 몇 년 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무언가를 할 때 그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 경험으로 인해 머릿속에 남은 지적 자산이라서 누군가가 뺏어 갈 수도 없다.
이렇게 회사는 거인이었고,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에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