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이 욕이 되어버린 시대

착한 사람은 루저일 수밖에 없는가?

by 마음정원사 안나

가끔 TV에 오랫동안 뜸하다가 오랜만에 얼굴을 내미는 연예인들에게 '그동안 뭐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사기를 당해서 전재산을 다 날리고 빚 갚느라 고생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연예인들을 숱하게 보면서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유명한 사람을 속일 수 있지?' 'TV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면 그 사람 인생도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왜 저 연예인이라는 사람들은 사기를 당해놓고서도 빚을 꾸역꾸역 갚아주는 것인가?' '사기꾼을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뭐,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의문을 의문으로 남겨두고 딱히 관련해서 더 공부를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듣기로 우리나라만큼 사기꾼에게 관대한 나라가 없다고 한다.


이탈리아 철학자가 본 한국사회

극단적 개인주의

일본에 지배당한 이후로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광복 이후에도 성공하는 사회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정의' '선'에 대한 관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착하게 살면 불이익을 당한다' '남을 이용할지는 않을지언정 착취당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베푸는 것에 인색해졌고, 손해 보고 있는 것은 없는지 철저히 계산하게 되었고, 내 가족, 내 이익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24시 가동하게 되었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남에게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착취하는 사람은 능력자라고 치켜세우고 착취를 당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당한 것은 이런 원리를 알고서도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 '당한 자의 탓'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나를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이용당한다'는 원칙은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았다.

JTBC 차이 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 강연 영상 캡처

이런 우리 사회를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끝없는 경쟁'과 극단적 이기주의'로 '일상의 사막화' 된 곳이라고 이야기하였다. < 김누리 교수의 차이나는 클라스 강연 보기>



'착한 사람'은 루저일 수밖에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가?

'착한 사람은 호구'라는 새로운 진리는 이미 이 사회에 통용되고 있다.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어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불편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것일까?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 테이크'

세 부류의 사람들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그의 책 '기브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GIVER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얻어내려고 하는 TAKER

받는 만큼만 주는 MATCHER


일반적 통념에 따르면 퍼포먼스가 가장 낮은 집단은 GIVER 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 결과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최상위 집단에 가장 많은 종류의 사람은 누구일까? 보통 TAKER라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이 또한 GIVER 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GIVER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의를 베풀고 이것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쌓이면 신용이 되고 신용이 쌓이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공이 되었다.


give and take.JPG


베풂은 100미터 달리기에는 쓸모가 없지만 마라톤 경주에서는 진가를 발휘한다.
-기브앤 테이크-



주변에 뛰어난 영업 사원이나 사업가들을 떠올려 보아라. 당장에 수익을 내려고 혈안인 사람보다 진심으로 고객을 생각해 주는 사람에게 다음 거래를 맡기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신뢰가 가는 영업 사원

한수를 보는 TAKER / 10수를 내다보는 GIVER

얼마 전에 한 신발가게에 갔을 때 한 영업사원이 다가와서 엄청 싹싹하게 이것저것 제안을 했는데 딱히 마음이 드는 게 없어 좀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매장을 나갈때는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듯 했다. 그의 태도는 상대에게 더 이상 얻을 게 없으니 함부로 대해도 그만이라는 영락없는 TAKER의 태도였다. 두 번째 매장에서 만난 영업 사원은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들어주었다. 그는 최대한 고객의 입장에서 Pain Point를 보안해 줄 수 있는 오래 신어도 불편하지 않은 신발을 골라 주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에도 여유롭게 다녀오시라고 친절히 답했다. 그는 손님에게 매출을 내겠다는 포획자적인 태도보다 당장의 이익은 없을지라도 손님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 일지를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GIVER의 태도를 취했다. 당연히 우리가 신발을 산 곳은 친절한 영업 사원이 있는 매장이었다.


TAKER는 매우 즉각적이다. TAKER가 한수만 보고 장기를 둔다면 GIVER는 10수를 내다보고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GIVER는 당장의 이익 대신 신뢰를 쌓는다. 그리고 그 신뢰는 자본주의에서 결국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 따라서 영업 사원, 사업가 등 개인의 브랜딩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즉각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상대를 도와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 길게 봤을 때 훨씬 더 성공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브랜드에 있어서 '신뢰'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브랜드가 살아남는 법

착한 기업 신드롬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소비하는 기업이 미치는 사회적, 윤리적 영향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회사, 대표가 성폭력 등 성적인 과오를 저지른 회사, 환경을 파괴하는 회사 등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기업들에 대한 소비를 끊고 있다. 반대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착한 기업'에는 지갑을 많이 열기 시작했다. 이것이 요즘 많은 기업들이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목숨을 거는 이유이다. <기사읽기: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


착한기업 신드롬.JPG 뉴스투데이 기사 캡쳐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발달로 사람들은 더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착함'의 기준이 더 이상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고 있다. 요즘은 직업을 옮길 때도 '평판 조회'라는 것을 한다. 전화 한 통이면 그 사람의 직장생활에 대해 훤히 알 수 있다. 그 내용에는 업무 성취도는 물론 태도와 같은 윤리적 문제들도 당연히 함께 거론된다. 실제로 최종 면접 통과까지 되었다가도 이런 평판 조회 때문에 취업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어찌 보면 이직이 잦아진 요즘 같은 시대는 개인이 곧 '브랜드'고 , 각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인지 모른다. 앞으로 더 많은 서비스 직종이 생기고 프리랜서로서의 기회가 많아질수록 브랜드에 기대하는 '선함'의 기준이 더 이상 큰 기업에만 머물지 않고 '개개인'에게도 적용될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타적인 성향을 간직하고 있지만 직장에서는 흔히 그것을 표현하길 주저한다. 그러나 협동 작업과 서비스 직종이 증가하고 소셜 미디어가 성장함에 따라 기버가 인간관계와 명성을 쌓아 성공을 극대화 및 가속화할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렸다. -기브 앤 테이크 -




우리가 불행한 이유

심리학에서는 '돕는 사람의 희열'이라는 용어가 있다.

베풂은 보상과 의미를 느끼는 뇌의 중추를 실제로 활성화한다. 우리가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면 뇌가 삶의 목적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무언가를 받을 때 보다 사실 줄 때 더 기쁨을 얻는다는 사실은 여러 학술 결과에서 밝혀진 바 있다.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고결한 본성을 거스르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Photo by Sorin Gheorghita on Unsplash


과거의 한국 사회가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한 치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서 보다 멀리 바라보고 깊이 생각해야 성장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당장의 이익만을 보고 상대방을 착취해서는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기 힘들어질 것이다. 기브앤 테이크에서 저자는 공동체 전체에 더 많은 GIVER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에서의 평가도 단순 성과 중심이 아닌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정도가 함께 측정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기적인 집단에서는 성공이란 제로섬 게임이지만 기버가 모이면 전체가 부분의 합계보다 더 커진다.



우리는 어릴 적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자랐지만 회사에서는 손자병법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온 조언을 더 심혈을 기울여 적용했다. 하지만 이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베풂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공동체가 가능한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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