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나온 그 괴물은 회사였다.

퇴사 욕구가 솟구쳤던 주간

by 마음정원사 안나

이번 주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주였다.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퇴사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 자신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간 크게도 팀장님에게도! 다행히 팀장은 나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이해해 주고 넘겨서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의 절박한 심리상태는 꿈에서도 나타났다.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A를 A로 전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광고팀과 미팅을 하고 난 다음날 꾼 꿈이었다. 광고팀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원점으로 돌리는 마법과 같은 기술을 가진 팀원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그들에게 프로젝트 A에 대해서 진행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 왜 A가 A인지에 대해서부터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며 A을 과연 우리가 A로 불러도 되는지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A가 아닌 B, C, D, E의 세계에 대해서 모두 탐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무지에 대한 괴로움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다시 A가 맞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으아아악 프로젝트 A는 사장이 지시한 거라고!!!!!! 광고팀은 무한 반복 루트를 돌다가 내가 뿌린 씨앗은 어디론가 다 날려 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와서 나를 돌아 버리게 만든다 음하하하하


그날은 내가 뿌린 씨앗이 날아가지 않도록 그 팀원들을 불러 모아다가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들은 설명을 열심히 듣는 듯했다. 여러 번 설명을 하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땅을 여러 번 갈아서 심기 좋은 고은 흙 위에 씨를 뿌리는 기분이었다. 근데 설명을 듣는 그들의 질문은 조금씩 땅을 파고 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케팅 포지셔닝을 논의해야 할 사람들인데 대화가 깊이 들어가서 제품의 설계 도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정리해 온 Key Point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겠다더니 결국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포기해 버렸다. 결국 이번에는 고운 흙이었지만 땅을 너무 깊이 파서 씨앗을 묻고 그 위로 흙을 덮고 꾹 꾹 눌러 버려서 씨앗이 위로 나올 수 없도록 숨을 막아 버린 것이었다.



회사의 악몽

나를 먹어 치우는 회사 - 사투르누스로 등장한 괴물


나는 몇 번에 걸친 미팅에서 좌절을 하였지만, 이번에도 차분히 설명을 하려다가 정말 ,,, 문자 그대로 숨이 ,,, 막혀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이런 악몽을 꿨다.


신화에서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아는가? 프란시스 고야가 그린 잔인하고도 생생한 그림. 언젠가는 이 그림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 그림에서의 인상이 딱 나의 상황과 일치했다. 그러했다. 나는 반복되는 요구와 무리한 자료 제작으로 회사에 잡혀 먹히고 있었다.

프란시스 고야 - 사투르누스

꿈속에서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40대 남자가 집에 무단 침입했다. 그는 특별히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는 않았지만, 흔한 40대의 중년 백인 남자였다. 우리 회사가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그 괴물이 백인으로 나왔다는 것을 꿈을 깨고 나서 알게 되었다. 꿈에서의 우리 집은 대저택이었는데 마침 내가 혼자 있는 동안 이 남자는 설명도 없이 집을 수리해야 한다고 들어와서는 온갖 장비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가져온 장비들 중에는 커다란 도끼 두 개와 무식하게 생긴 대형 사시미칼 하나가 있었다. 나는 저 사람이 들어온 이유가 다름 아닌 나를 죽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집에 있던 과도칼을 침대 속에 숨기고 언제든지 그를 찌를 태새를 준비하였다. 과도칼은 그가 가진 도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았지만, 생명이 절박한 순간이 되자 뭐가 어찌 되었건, 실질적으로 상대를 찌를 수 있는 무기가 있다는 것 자체로 나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회사 생활에서 내가 받는 동료로부터의 압박, 상사로부터의 압박, 그리고 판매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박을 칠 광고를 만들어 보라는 사장의 지시는 도끼 두 개와 대형 사시미만큼 위협적이었고, 그 와중에 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라곤 나의 논리를 최대한 설명하는 보고서를 열심히 만드는 것뿐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공격 태세를 갖추고 전투에 임했지만 그것은 허공에 휘두르는 귀여운 과도칼 수준이었다.


과도칼로 정신 무장을 하는 나를 보고, 정체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대놓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꿈에서 괴물은 저 사투르누스와 같은 얼굴을 하고 알몸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가히 위협적이었고, 성기가 없는 그의 알몸은 그가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꿈속에서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곳곳에 SOS를 요청했다. 내가 터무니없이 힘이 없고, 약세라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괴물이 가져온 칼과 도끼를 버려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괴물이 모든 통신망을 차단하면서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를 도와 주기러 한 가족들과 친척들의 연락이 모두 끊어지면서 나는 그의 포획망 속에 고립되어갔다. 제품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리한 실적 요구, 직원들의 사기 저하, 상사와 부하 간의 불신, 서로의 능력을 탓하는 패배주의 문화 이러한 것들이 나를 숨 쉴 수 없게 몰아가고 결국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고립무원에 처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그저 괴물의 희생량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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