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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사 안나 May 26. 2024

아버지가 이니프에 첫 멤버로 합류하셨습니다!


퇴직 후 찾아오는 고독  


저희 부모님은 결혼을 조금 늦게 하셔서 (지금으로 치면 늦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 벌써 연세가 70대 중반이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기업에서는 50대 중반에 퇴직하셨지만, 그 뒤로도 여러 가지 활동을 왕성하게 활동하셨기에 진짜 퇴직을 하신 것은 70살부터였습니다. 언제나 바쁘게 사회활동을 하시던 분께서 몇 년 전부터 아무런 일정 없이 집에 계시는 것은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남는 시간을 전부 정치에 몰입하시더니 매주 주말이면 집회에 나가셨습니다. 하루 종일 유튜브로 정치 콘텐츠를 몰아보셨는데 저러다가 화병이 나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피부병이 시작되었어요. 간지러움이 심해지더니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가 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피부 건조증이 노인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했는데, 막상 처방해 준 약을 검색해 보니 우울증과 불안 치료라고 나오더군요. 그말인즉 피부 건조증이 고령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정신적인 이유에서 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죠. 무료한 일상이 병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 되었습니다. 


전 세계 리더들이 신뢰하는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에 어떻게 사람들이 더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AI와 같은 기술의 발달은 더 많은 여가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유를 얻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늘어난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심리적으로 더 괴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죠.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이 들어온다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한다는 것이기도 한데 이런 중간 과정을 모두 없애고 돈만 벌게 될 경우 사람들은 풍요로울지라도 고립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이것이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입니다. 퇴직 후 삶은 정확히 이런 미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단편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도 못 챙기면서 누구의 마음을 챙길까.

퇴직한 아버지의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고민했습니다. 취미 생활을 해 보시라고 제안하고 여행을 다녀오시라고도 해봤죠, 실제로 그래서 아버지는 합창단에 들어가서 한동안 노래를 열심히 부르시기도 했고, 지방에 숙소를 구해서 지역별로 한 달 살기를 하기도 하셨어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 또래분들을 위한 마음 챙김을 도와 드려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도 했지요. 책을 읽고 다 같이 모여 마음을 나누면 적적한 마음을 돌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독서 모임이라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은 형태다 보니 그 또한 맞을지, 과연 내가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대내외적으로 마음 챙김을 하는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도 못 챙기면서 내가 누구의 마음을 다독이고 챙겨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빠의 퇴직 후 삶은 제게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일자리를 마련해 드리자!!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주말 바람을 쐴 겸 차를 타고 근처 커피숍을 가던 길이었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와이퍼가 좌우로 움직이며 계속 밀어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대뜸 ‘아버님께 일을 드리자!’ 라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오잉? 내가 아빠에게 일을??’ 아빠에게 직업이 없어졌다는 것을 한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직업을 만들어 드리자는 것이었죠. 제가 퇴사를 하고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가고 있긴 했지만, 아버지께 아무 일이나 드린다고 만족하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일을 아버지께 제안 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남편 말을 듣고 보니 근래에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는 제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기업에서 강의 할 때 어떤 강사가 되어야 하는지, 인사팀에서는 어떤 강사를 찾고 있는지, 지금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내용이 필요한지 등등 말이죠.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제가 하려던 일의 찐 전문가셨습니다. 군대에서 20년간 국군 장교로 일하시면서 인사업무를 담당하셨고, 제약회사에서 15년간 인사팀에서 인사관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고용하고 고민을 들어 주곤 하셨습니다. 퇴임 후에는 지인의 만드는 사업의 초기 멤버로 합류해서 회사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경험해 보신 분이셨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더군요. 아니, 그때는 이야기를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전혀 감이 안 왔지요. 그런데 피는 못 속이는 거라고 했나요? 제가 지금 하려는 일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아버지가 평생 해 오셨던 일이었다니! 아버지는 제가 어떤 일을 하려는지 다 알고 계셨지만 다만 자녀가 하는 일에 훈수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계셨을 뿐이었던 거죠. 




아버지에게 합류를 제안하다  


갑자기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유독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것도 지금 와서 보니 인사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성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인사팀 분들은 대부분 사려 깊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것을 아버지 개인의 특성이 아닌 집단의 특성으로 이해하자 그동안 사회 속에서 생활하던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를 더 잘 알것만 같았습니다. 주변에 보면 부모님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저는 전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관심사가 같아서 결국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아버지께 정식으로 이니프에 합류하실 것을 제안해 드렸습니다!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다며 기분 전환도 할 겸 아버지께 남산 둘레길을 걷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날씨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이었어요. 동대입구에서 걸어 나오니 너무 예쁜 찻집이 보이더라고요. 그곳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어떤 것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로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몇 마디만 해도 대화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을 얻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고 풍요로워졌어요. 70대의 경험 많은 전문가가 30대의 젊은 스타트업 대표를 돕는다는 영화 '인턴'이 떠오르더군요. 저도 아버지께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재 활용 - Neuro Diversity 


우리 사회에는 오랜 사회 경험으로 혜안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나이로 제한을 그으면서 그 분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앞으로 젊은 인력은 점점 줄어들고 경험이 많은 고령층은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아직 일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어른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니프INYF 에서 먼저 그런 멋진 성공사례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할게요! 많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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