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 장애는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내가 결코 회사형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개성이 강한 사람도, 정형화된 사회 구조를 답답하게 여기며 틀을 새로 짜는 혁명가도 아니다. 나는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와 같은 천재들은 답답해서 중퇴하는 교육제도하에서도 잘도 순종하며 무탈 없이 지냈고, 체계라고는 없는 사람이어서 회사에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며 일처리 하는 법도 겨우 배울 수 있었다. 대단한 수완도, 능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회사라는 곳은 갑갑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해 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배우게 해 주고 돈까지 주다니...... 무능력자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근데 그런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삶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난 때때로 좀 엉뚱하지만 진심으로 사람과 교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독특한 사람들과도 소탈하게 소통할 수 있었는데 그 바탕에는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상대의 상처 난 마음을 바라봐 줄줄 아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고, 종종 사람들 안에서 보석 같은 가치를 발견했으며, 진실되게 소통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치유하고 세상을 밝혀 주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내가 스스로에 대해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내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확신,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이라는 확신, 내가 남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줄 아는 사람이라는 확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날선 반응, 과연 정상인가?
전혀 의도적이지 않은 실수도 악의적이라 생각했고, 내가 느끼는 작은 불편들은 공격으로 느꼈다.
레스토랑에 가서 서빙하는 사람이 주문을 잘못 받아서 엉뚱한 메뉴가 나오면 분개했고, 돈 주고산 물건이 생각보다 좋지 못하면 제품 퀄리티를 문제 삼으며 분노했다. 전혀 의도적이지 않은 실수도 악의적이라 생각했고, 내가 느끼는 작은 불편들은 공격으로 느꼈다.뭐가 나를 그토록 예민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야말로 모든 것들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회사생활에서 우리는 동료로부터, 상사로 부터 실시간으로 끝없이 자극 반자극으로 강화훈련을 받는다.
9번 칭찬을 받아도 1번 비난을 받는다면, 우리는 공감과 나눔보다 공격과 방어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특히나 일에 있어서라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하면서 받는 이런 스트레스는 가끔 임계점을 넘게 만드는 듯 하다. 원래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훨씬 커 보이지 않는가. 9번 칭찬을 받아도 1번 비난하는 사람 때문에 우리는 일하면서 공감과 나눔보다 공격과 방어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 하에 24시간 민감함의 안테나를 360도로 켜놓고 있게 되는 것이다.
분노의 기관총을 장전하고 다니는 사람들
주변을 둘러보니 잔뜩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기관총을 장전하고 언제든 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아주 많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