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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의 이야기 <홍학의 자리>

책과 헤엄치며 살아가는 중

by 마음부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많은 일을 통해 배웠다.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가. 그 인정에 중독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 <홍학의 자리> 본문 p.334




이 문장은 우리의 행복과 가치 판단이 타인의 평가에 의해 의존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더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무조건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욕구가 삶을 흔들 만큼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갇혀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이다. 요즘 2030 친구들에게 핫하다며 읽어보란다. 책표지를 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온통 빨간 깃털이었다. 제목처럼 '홍학'이나 빨간색으로 한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낯설고도 이국적인 이미지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소설을 검색해 보니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 대출하였다.



2012년 <백일 청춘>으로 등단한 정해연 작가

로맨스를 시작으로 이후 <더블>이라는 책을 기점으로 해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로 전향한다. <사건의 진실>, <내가 죽였다>, <유괴의 날> 등 대중적인 면과 문학적인 면을 넘나드는 장르 문학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홍학의 자리>의 프롤로그 첫 문장이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로 강렬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로 끝난다.

독자의 의문을 제대로 끌어들이며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한다.

처음 드는 생각은 금지된 사랑이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등장인물 '채다현'이 남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읽으면서 꾹 눌러왔던 편견을 흔들어 깨운다.



채다현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인물이다.

교사 김준후와의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홍학을 보러 네덜란드 아루바 섬에 가자는 그의 말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외침이었는지 모른다. 홍학은 붉고 아름답지만 소설 속에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그건 바로 채다현. 현실에서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저 한 사람에게만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절정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이름도, 그를 묘사한 부분도 여자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소설의 진짜 반전은 채다현이 남자라는 설정보다는 김준후가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아내와 다현 두 사람의 감정을 철저히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냉정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누군가의 파멸 위에 서 있는 김준후에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민다.



엄마,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존재인 다현은 끝까지 외롭다. 그가 말한 '홍학의 자리'는 어쩌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은 마지막 바람이자 환상이었을지도. 어느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던 그는 결국 스스로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냐고? 그리고 누구를 외면하고 있느냐고?

우리는 쉽게 타인을 편견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때로는 타인의 고통마저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철저히 숨기기도 한다.

채다현은 스스로 목숨을 선택했지만 그를 진짜 죽인 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보다 외로웠을 그가 찾던 홍학의 자리는 결국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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