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8
나는 하루 세 번, 많은 약을 먹는다.
허리 통증과 관련된 약도 있지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을 위한 약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약, 뇌전증 약도 있다.
나는 말총증후군 환자 이전에, 뇌전증 환자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건 2001년, 그리고 2009년까지 공식적으로 아홉 번 쓰러졌다.
쓰러질 때면, 곱게 쓰러진 적은 거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코피가 나 있거나, 치아가 부러져 있거나, 심할 땐 허리를 못 쓰고 일어날 수 없어서 119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다행히도 ‘데파킨크로노’라는 약을 먹으며 증세가 잘 조절되기 시작했다.
물론 완치는 아니었다.
뇌파검사를 하면 여전히 간헐적인 펄스가 보였다.
그 병을 처음 마주했을 땐 두렵기도 했고,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아가 작아지는 경험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껏 살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
혹시 내가 운전 중에 발작했다면?
혹시 머리를 부딪히거나, 도로에 쓰러졌다면?
그 어떤 경우도 죽음과 가까웠을 수 있다.
어쩌면 내 허리는
그 쓰러졌던 순간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케도, 그 허리는 끝까지 버텨줬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오늘까지도 꽤 잘 살아낼 수 있었다.
지금 나의 허리가 아픈 이유는,
어쩌면 “휴가 좀 주세요” 하고 나에게 조용히 신호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만 쉬게 해 주세요, 나도 좀 쉬고 싶어요…" 하고 말이다.
그래,
정말 고생 많았어, 나의 허리.
지금쯤은 좀 쉬어도 될 때야.
나도 너 덕분에 쉬어간다.
우리 함께, 잠시만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