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역사도 나처럼 안 살아봤어

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내 딸이 살게 되기를

by 다정한 마음결

오늘 밤, 딸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의 입에서 문득 이런 말이 나왔다.

“엄마,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그 말에 순간, 나의 녹록지 않은 현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의 이유 없는 순수함이 이어졌다.

“어른이 되면 일할 수 있잖아. 나도 엄마랑 같이 일하고 싶어.”


그 말은 ‘일’이 좋아서도, 어른이 멋져 보여서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어서.
그 방법이 ‘일하는 엄마 곁에 함께 일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작은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뭉클하기보다는 짠하고, 미안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그 여린 마음이,‘일’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조용히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자주 생각한다. 여성의 일터 진출은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었을까.

‘워킹맘’, ‘육아휴직’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언어로 자리 잡은 지 고작 20~30년 남짓.
그러니까, 우리가 겪는 복잡한 감정과 현실들은 어쩌면 역사적으로도 아직 적응 중인지도 모른다.

일은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 나도,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해낸다는 건,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가끔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 역사도, 나처럼 안 살아봤어.”


내가 사는 아파트는 광화문 근처에 있다. 직장인 밀집 지역이라 그런지 워킹맘의 비율이 무척 높다.

아이들 하원 시간 즈음 놀이터를 가보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시터 이모님 손을 잡고 있다.

젖병을 든 할머니, 미끄럼틀 아래서 아이를 받쳐주는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는 일터에서 일하고, 저녁이 되면 양육을 바통터치하듯 이어받는 구조.

거의 세대 분업 체제와 다를 바 없다.


그런 풍경이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

우리는 정말 괜찮은 것일까?

지금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엄마이자 나’로 살아가는 세대이다.


나는, 내 딸이 20년 뒤에 겪게 될 사회는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아직도 머릿속에서 답이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무엇이 바뀌어야, 이 삶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사회일까.

만 3년 정도의 육아휴직이 보편화된 사회.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오후 3시 정도에 퇴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구조.

보수가 조금 줄어들더라도, 그 선택을 ‘책임 회피’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으로 바라보는 조직 문화.

눈치 보지 않고, 당연한 권리로 그런 제도를 쓸 수 있는 사회.

사회가, 조직이,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


그런 날이 오기를.


이상,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3개월 붙여 쓰는 것조차 눈치 보였던,

아이 둘을 키우며 전문직이라는 자리를 간신히 지켜내고,

할머니와 시터 선생님의 손을 빌려 24시간이 모자란 하루를 살아내는,

한 엄마의 아주 솔직한 바람이다.


지금 엄마인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내 딸이 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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