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집까지의 10분
시터 선생님이 오신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을 모시게 된 덕분에, 첫째 아이를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하원시킬 수 있었다.
첫째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즐겁게 놀았고, 나 역시 오랜만에 출근 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조금은 숨통이 트인 듯했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휘청거리던 삶에 누군가의 도움이 더해지니, 잠시라도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업무를 이어가고 있던 중,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첫째 아이가 할머니와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 한다며, 둘째를 시터 선생님께 맡기고 다녀와도 괜찮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제 겨우 삼일째지만, 둘째도 어느 정도는 적응했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다고, 다녀오시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 순간부터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자꾸만 거실에 설치된 화면에 눈길이 갔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왕 선생님을 모셨으니, 믿어보자.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고, 화면 속에서 겨우 아이를 재우고 숨을 돌리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 마침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요새 좀 고생했으니까, 소고기라도 먹고 들어가자.”
그래, 오늘만큼은.
우리는 작은 고깃집에 들어가 메뉴를 주문했고, 불판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에 잠시 마음이 풀어졌다.
몇 분 후, 무심코 확인한 핸드폰 화면 속에서 둘째는 이미 깨어 있었고,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아이는 마치 뒤집어지듯 오열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고 계셨다.
순간, 내 마음과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빠, 정말 미안해. 나 지금 당장 가봐야겠어.”
고기는 불판 위에서 여전히 익고 있었지만, 나는 단 한 점도 먹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식당에서 집까지 달려간 그 시간은,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저, ‘엄마라는 감각 전체가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인 순간’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나와서 뛰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아무리 달려도 집은 멀게만 느껴졌다.
숨이 차오를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집에 도착했을 때, 둘째 아이는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빨갛게 부은 눈이,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 순간, 아이는 거짓말처럼 바로 울음을 멈췄다.
너무나도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조그마한 아이와 나 사이에 감정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나는 이제 막 여덟 달 된 둘째 아이를 한없이 안고 또 안았다.
요즘 첫째가 유치원 적응을 어려워하니까 나도 모르게 딸아이에게 마음이 더 쏠려 있었는데,
아직 말도 못하는 이 작은 아이도 나를, 아니,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구나.
그러고도 아이는,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는다.
나를 보며 까르르, 정말 깔깔대며 신나게 웃는다. 그저, 엄마가 곁에 있으면 되는 거였다.
나는 그걸, 못 해주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내일도 일하는 날인데... 나의 내일은,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