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엄마 자리를 내주던 날
복직한 지 겨우 한 달,
첫째는 유치원에 다닌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매일 아침 “엄마 보고 싶어” 하며 눈물을 쏟았다.
어김없이 등원길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도 딸아이는 울면서 등원하는데, 아이의 눈물이 평소보다 더 깊게 마음에 박혔다.
"엄마, 한 번만 일찍 오면 안 돼? 한 번만 일찍 올 수 있는 기회를 줘"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조금 더 일찍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아이를 평소보다 일찍 데리러 갔다.
유치원 선생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섬세하고 예민한 우리 아이에게는 긴 원 생활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어린 둘째를 돌봐주시는 친정 엄마는 이미 하루 종일 손이 모자랐고, 누군가 대신 첫째 하원을 도와줄 사람이필요했다. 급히 시터 선생님을 구하는 공고를 올렸고,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친정 엄마가 첫째를 데리러 가시고, 그 시간 동안 시터 선생님이 둘째를 돌보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시터 선생님이 온 첫날.
시터 선생님은 참 따뜻하고 성실한 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오셨고, 심지어 내 마음까지도 헤아리려 애써주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분이 돌아가신 뒤 내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요동이 시작됐다.
나는 내 아이의 '엄마 자리'를 지키고 싶은데,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 사람이 친정엄마든, 시터 선생님이든, 유치원 선생님이 든...
나의 마음속에는 "엄마는 나야"라고 외치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우리 엄마는 나를 헌신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며 키우셨는데, 나는 일하면서 그만큼 내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결국,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밤공기를 마시며 생각했다.
아, 내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너무나도 애쓰고 있었구나.
두 아이를 돌보고,
첫째의 유치원 적응 문제로 매일 고민하고,
둘째를 예쁘게 키우고 싶으면서도 여유가 없고,
전문가로서 다시 일터에서 자리 잡고자 하고,
그 와중에도 이사 등으로 더 좋은 환경을 꾸려보려 애쓰는..
나는 모든 곳에서 전력질주를 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우리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자기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려고 애쓴 엄마의 흔적이라는 걸
엄마는 바빴지만, 나를 너무 사랑해.
엄마는 자기 일도 하고 나도 돌봤어.
그리고 흔들리는 모습도 솔직히 보여줬어
엄마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어
그렇게 기억될 엄마라면, 우리 딸은 자기 인생을 좀 더 주도적으로 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사랑은 완벽해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진심이 담겨 있을 때 아이는 그걸 알아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흔들리며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