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크리스마스선물 같은 일들.
#우리의작은깨달음 #일상다반사 #5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좀 투덜댔다고 이리 역습을 해온다는 말인가. 어찌 수은주가 일주일 만에 20도를 간격으로 두어 오르고 내린다 말인가. 이렇게 극과 극의 날씨가 조선조때도 있었을까. 겨울에 미친 듯이 추울 때면 살아생전 할머니께서는 6.25 동란 추위는 추위도 아니었다, 하셨는데 그러시면서 바깥에서 산이며 들을 타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온 당신의 손주의 시린 발은 할머니의 아랫목으로 얼은 손은 당신의 손으로 주물주물 하셨지. 뭐 그런 어린 날이 그립다는 것은 아니고 많이 추우니까 나의 첫 따뜻함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였을까를 생각해 보는 북극한파의 크리스마스 주간이다.
어제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 차분한 머릿결이 남자아이임에도 곱게 빛나며 똘망똘망한 눈빛이 잠자리 안경을 너머로 초롱초롱 한 그 아이가 크리스마스 열쇠고리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초등학교 아이들 학원버스 아르바이트를 몇 주간 하고 있는데 그 녀석은 한 번도 등원과 하원을 시켜준 적 없었는데, 얼굴도 어제 처음 본 친구였는데, 그 아이는 나를 한 달간 지켜본 모양이다. 너무도 뜻밖의 선물이라 어리둥절, 이리둥절. 고맙다는 말도 어렵사리 간신히 혀에 의식적인 힘을 주어 얼버무렸고, 하원 시간이 되어 이름만 간신히 묻고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헤어졌다.
그 아이와 나의 경계(국경)는 그렇게 확정되었다.
전쟁은 국경에서 시작됩니다. 불륜도 혁명도 국경에서 발생해요. 밖에 있는 국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국경, 그러니까 마음의 왕국들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죽음의 시선으로 보면 그 경계가 환해집니다. 불륜의 시선이라고 해도 좋아요. 미래로 날아가 자신의 삶이 멈추는 자리에서, 그 시선으로 자기 삶을 미리 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자기에게 이미 주어진 것을 자기 힘으로 다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운명애입니다. 저 뒤에 있는 강의 제목이에요, 운명애.
그러면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자연사라고 해도, 그러니까 자기 종의 죽음 일반에 속한다고 해도, 자기 죽음의 고유성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체되기의 방식입니다. 좀 어려운 말이죠? 일단 외워두세요._서영채_왜 읽는가_p200-201
지난달, 인디언의 말로는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 달 어느 날에 동네 앞산을 올라 빈가지에 선명하게 파랑 하늘을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경계는 만남이기도 하구나’
경계니 국경이 하는 것을 헤어지고 나뉘는 것으로만 생각하였었는데 나뉘고 헤어지는 곳은 만나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경계가 더 이상 슬프기만 하고 밉기만 하지 않게 되었다. 빈가지에 빛나는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가 만남의 경계에 있고, 겨울바다의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의 국경이 섞이는 신비. 그리하여 그토록 눈이 멀게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만의 경계에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을까, 자신의 국경을 지키는 초소에 얼마쯤에 보초병을 세워두었나. 얼마 큼이나 경계를 나뉨으로만 생각하고 살았을까, 그리하여 돌아가버린 나의 사람들과 우리의 시간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인용문은 자연사가 아닌 고유성의 죽음의 시선으로 보면 경계가 환해진다고 한다. 그 환해진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펴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체가 된다. 그렇다면 ‘죽음의 시선’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 그것은 국경을 거부하지 않는 것.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경계를 두르고 그곳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시간을 만나는 일. 머릿결이 유난히 빛나고 잠자리 안경도 가리지 못한 초롱초롱 눈망울의 그 남자아이가 내민 크리스마스선물 같은 일을, 나도 따라 해보는 일.
Ps. 일상다반사는 2~3쪽으로 글의 분량을 정해두었는데, 일주일을 놀다가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글을 쓰다 보니 짜임새도 없고 분량도 저것의 반도 채우지 못한다. 경계는 만나는 일이다,라는 주제를 좀 더 생각하면 분명히 몇 가지는 더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있고 따라 해봄직한 예시들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경계를 만나는 방법들 중에, 가장 상단에 놓일 몇 가지 중에 책 읽기가 있다는 말도 적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