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좋을 뿐이다.
#우리들의작은깨달음 #일상다반사 #8 #당신의기쁨과위안마음의필사가전하는것
0.묘연하다
역시 이번 주도, 지난 주와 다르지 않게 제목을 먼저 쓰지 못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역시 이번 주도, 지난 주와 다르지 않게 묘연하다. 매번 이렇다면 나는 필명을 묘연하다로 해야겠다.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글로 쓸 것인가, 무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제는 조금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도 머리도 지끈 거리는 이 글쓰기를 하고 있을까. 아침에 늦잠에 빠져있었을 때 몽롱하게 무엇인가 떠오른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잠결에도 입술 밖으로도 그 문장을 소리 내보았는데 불과 3시간 만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인스타그램에 간헐적으로 쓰던 글들에 형식을 세우고 내용의 방향을 잡아 쓰고 있다. 단상의 형식으로, 시인이 골라 놓은 단어와 문장을 읽고, 우리의 단어와 문장을 만나는 일. 그리하여 그 만남의 행위(리츄얼)가 스스로를 자신에 더 가깝게 닿게 해 주고, 자신의 삶의 한복판에 서게 해주는, ‘당신의 기쁨과 위안’이 된다는, ‘마음의 필사’가 그것이다.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지만 하나의 주제를 마무리하고 그간의 ‘마필’을 돌아보니 어떤 마음의 갈래가 보인다.
1. 정해진 것들과 정할 수 있는 것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이라는, 그녀의 시선집이 지난 23년 12월 #당신의기쁨과위안 #마음의필사 주제였다. 마필이 형식을 잡고 처음 선보이는 시절이었기에 시작이라는 단어가 필요했던 듯하고 물리적 달력과 사회의 시간이 끝이었기 때문에 끝이라는 단어도 필요했던 듯. 하지만 언제난 선택의 이유는 그 당시의 어떤 끌림이었을 텐데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제나 그때에서는 지나온 지금이 하는 해석이다. 그래서 정확지 못해서 나쁘다고 하는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불명확하기에 묘한 매력이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선택의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선택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여겨서 너무 노여워할 필요도 없고 너무 기분이 좋아 머스크의 우주선에 자신을 실어 달까지 갈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대우주적 시공간, 자연의 물리적 섭리 계절 대륙의 모양과 바다의 색 파도의 오고 감 등등. 우리가 바꾸기 힘든데 바꾸고 싶고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 것 중에는 사회의 관습과 문법들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 그리고 실은 바꾸기 힘든데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고 말해지는 것들은 우리들의 마음가짐.
2. 역설적인 ‘선의’
종로 청계상가에 철학전문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달고 있는 ‘소요서가’라는 서점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_앙토냉아르토_이진이_읻다’ 주제로 한 북토크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 그 살 떨리는 긴장의 관계를 배웠고 다시 정리해 본다. 나의 모습을 사회가, 그건 아니야 내가 말하는 것을 주워 삼키고 어떻게든 우리의 방식을 체화하도록 해. 그래야 너는 우리랑 함께 살아갈 수 있어(살아남을 수 있어). 이것이 아르토라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를 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프랑스 사람 아르토를 지독하게 괴롭힌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병(정신병이라고 불리는)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병이 고통스러울 때 그의 표현으로 ‘생의 경련’ 그러니까 자신의 사상과 감정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비극은 사회가 그를 위험분자로 여겼다는 것. 그래서 9년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고 그를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역설적인 ‘선의’. 아르토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 2년인 가를 더 살았을 뿐이라고 한다.
3. 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아르토가 정신병원에서 50회 넘는 전기충격을 받았고(보통 치료 목적의 전기충격보다 2배 이상의 횟수) 전쟁으로 인해 먹고 입고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결핍되어 가는 그곳에서 자신이 이제 정상인이라고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처절한 편지를 지속해서 보냈다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 그것이 사회가 말하는 정상인으로의 편입을 뜻 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정해진 것들과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것들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생각할 것도 없다. 향유하고 전유하면 그뿐. 하지만 늘 힘이 든 것은 이런 것이다. 나는 왼쪽으로 가고 싶은데(왼쪽은 표현일 뿐이다) 사회는 돌고 돌아 여객선으로 위장한 화물선이 사람들을 태우다 저어 소용돌이로 침몰하고 사람에사람에 밀리고밀리고 깔리고깔리고 숨이막혀요숨이막혀요 30년이 지난 이제야 간신히 독의 가습이 유죄가 되고 하지만 아직도 노동의 권리가 공장 꼭대기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을 해내가자는 나름의 전언. 당신의 기쁨과 위안 마음의 필사, 그 첫 필사의 마음이었다.
4. 그것이 좋을 뿐이다
어릴 적에는 가족과 친구들 주변의 사람들의 ‘생각’을, 그들을 위한답시고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어떤 마음의 결핍 그리고 불안. 이런 것들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겨우 희미하게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물에 물을 타고 술에 술을 타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살아가는 방식과 내가 짓는 시들과 내가 쓰는 글이, 내가 만나 시에서 내가 느낀 기쁨과 위안들이, 나 아닌 어떤 이들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면 좋겠다, 하는 것. 왜 그것을 바라는지는 모르겠다.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알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의 결론은 그냥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 시를 읽고 책을 읽는 것은 뭔가 나를 고양시킨다. 그래도 내가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생각과 사람들과 삶에서 위로와 재미 깨달음 그렇게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좋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좋다. 그런 좋고 재밌는 것들로 내가 그리고 당신 스스로가 당신에 기쁨과 위안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것이 좋을 뿐이다.
Ps.’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고흐’라는 책과 옮긴이(이진이)의 해제. 그리고 아르토의 그런 말. 자신의 시가 엉망진창인 이유는 자신의 내면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써냈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의 시는 완결적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