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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chi Aug 17. 2023

지속하지 않음으로써, 지속되는 사랑에 대하여

tvn 단편드라마 '여름감기' 단상

며칠 연속된 과음에 정신은 혼미하였고, 지금의 이 무지막지한 미친 더위가 아직은 최강의 폭염은 아니라는 예보 속에서, 몸뚱이마저 100% 습도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tvn 단편드라마 '여름감기'를 우연하게 스트리밍 하게 되었다. '엄지원'을 좋아해서 선택하게 된 것 같은데,


'어느 날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억지로 마신 술이 역류했던 날,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은 자꾸만 잘 나타났습니다. 싸움도 못하면서 괜히 휘말려주었고, 음정 박자 무시하며 너무도 무정하게 '무정 브루스'를 불러주었고, 새벽비 속을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내가 죽을까 봐 하얗게 질려있던 당신의 얼굴이 낯설지만, 고마웠습니다. 고마운 마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당신이 준 식혜를 깨끗하게 비울뿐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잊지 않으려고 애쓸 겁니다.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당신의 시간에 끼어들어 참 행복했습니다.'라는,


드라마 마지막 글이 내 마음을 칼로 베어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어찌하여 상대에게는 자신을 잊어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사랑인 것인가? 혹시 그것은 어떤 사랑의 또 다른 완성인 것인가? 그런 사랑에 왜 매료되는가? 이 궁금증을 깊이 생각해보려 한다.


정신없이 빛나는 네온사인의 화려함과 깊게 대조적으로, 가로등조차 힘을 잃은 유흥가 뒤골목은 검정이다. 그 검정이 '인주'다. 하루를 육개장과 소주를 얼음컵에 콸콸콸로 시작하는, 12살에 미친 아빠의 폭력을 피해 엄마와 도망친 곳이 지옥이었던, 엄마의 장례식 날에 계속 맞다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그렇게 죽기는 싫어서, 아빠의 목을 깨진 유리병으로 베어버린, 그렇게 12살에 사람을 죽여버린, 17살에는 살인을 처음로 보고, '아 도망쳐봤자겠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39살이 된, 아침을 육개장과 소주를 얼음컵에 콸콸콸로 시작하는 '인주'


그런 그녀 앞에서, 노상 포장마차에서 심부름을 하지만, 그래도 편의점보다 130원이 싸다며 국수 두 봉지를 사기 위해 동네슈퍼를 뛰어다니는, 23살 딸이 말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뜬 눈을 밤을 새우고도,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는 딸에게 화도 내지 못 하는, 미안한 마음에 딸의 아르바이트 가게를 먼저 찾아가는, 망가진 물건을 고쳐주어서 말끔한, 더러운 곳을 청소해 주어서 깨끗한, 맑고 밝은 '진도'가 나타난다.


인주는 유리병으로 취객의 머리통을 갈겨버린다. 취객의 진상에 쩔쩔매고 있는 진도 위해, 인주가 먼저 진도를 위해. 서로를 본 것도 인주가 먼저다. 창문을 통해 자신의 동네로 이사 온 진도를 인주가 진도보다 먼저 보게 된다. 이 설정은 인주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진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대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인주의 삶을 위해 그 스스로가 진도라는 '힐러(고쳐주는 사람)'를 끌어들인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진도의 직업이 망가진 것들을 고쳐주는 사람이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취객의 머리통 사건 이후로, 진도는 겹치는 우연으로 적극적으로 인주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인주의 실수로 내리막길을 내달려가는 노점상 사과들을 서커스적 다리 짓기로 막아 인주에게 건네고, 하지도 못하는 싸움으로 인주를 구하려 하고, 갑자기 비가 내리는 새벽길을 함께 걸은 다음 날에 인주의 집 문고리에 빨간 우산을 걸어 놓기까지. 인주는, 이게 뭘까 하는 표정이지만 싫은 내색은 없다.


하지만 인주는 악귀처럼 돈을 수금하는, 자신의 '똥통' 같은 삶을 진도에게 보이게 되고 자신의 모습이 창피한 인주는 진도를 밀어낸다. 진도 역시, 당황하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사과'봉지를 인주의 문고리에 걸어둠으로써 인주와 인주의 삶을 이해하려 한다.


인주 앞에 칼을 든 남자가 나타난다. 이네 그녀의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다행히도 인주는 병원에서 눈을 뜨는데 그 옆에 진도가 엎드려 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인주는 진도에게 자신의 방을 보이고 진도는 특기를 살려 인주의 공간을 말끔히 고치고 깨끗이 치워준다. 말끔하고 깨끗한 자신의 공간에서 인주의 마음은 완전히 열리고, 이제 그들은 '함께'가 된다. 그렇게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난 소풍에서 둘은 자신의 속 깊은 곳에 있는 '노른자' 이야기를 나누고 한 걸음 더 자신의 상대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 드라마 최고의 낭만, 둘만의 '라보'에서 울리는 '무정브루스'!


"그거 뭐였어요?"

"그때 가게에서 불렀던......"

"그거 지금 불러줄까요?"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겠지 변해버린 당신이기에 내 곁에 있어달란 말도 못 하고 돌아서야 할......"


그렇게 가까워진 그들을 방해하는 요소는 언제나 그들의 주변이다. 진도의 딸이 인주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게 되고 그 사실을 안 인주는 황망한 마음에 일을 처리하지만, 또 다르게 그 사실을 안 진도는 인주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녀를 떠나려 한다. 인주는 담담히 진도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지옥을 향한다. 하지만 지옥은 역시 지옥, 인주는 자신이 그곳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진도를 돌려세운다.


그리고 진도는 바닷가 '해 뜨는 국수' 사장으로 인주는 교도소에, 그리고 울려 퍼지는  

'나는 당신이 좋아서 잊지 않으려고 애쓸 겁니다.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당신의 시간에 끼어들어 참 행복했습니다.'


인주와 진도의 일련의 이야기 속에서 사건들의 연속은 작위적이지만, 우리의 삶 역시 우연의 이름 아래서 어느 정도 작위적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무리가 없다. 대신에 우리가 생각해 봄직한 것은, 앞 써 이야기한 인주의 마지막 선택이다.


어찌하여 그녀는 진도를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기도하는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떠나갑니다.' 이 명제는 실상 흔한 것이다. 우리나라 90년대 락발라드의 가사는 모조리 저 명제에 빚을 지고 있고, 가요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당사나떠'는 많다. 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삶의 방식으로 그리고 사랑의 완성의 방식으로 '당사나떠'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시대는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라고 채찍질한다. 학업에서도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라는 것이 이 시대의 지상명령이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면서. 하지만 실상 우리네 삶은 그 명령을 수행하기 어렵다. 모두가 같은 욕망을 욕망하는데 세상의 것들은 태초부터 유한하다. 소유방식의 삶의 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자를 남기고, 실패자의 수는 성공자/승리자의 수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려운 명령을 수행하려다가 완전히 퍼져버리고, 퍼져버린 스스로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그렇게 다시 실패하고 다시 실망한다. 그렇게 삶은 겉잡을 수 없이 쪼그라든다. 비약일까? 하지만 우리 사회가 멈춤을 포기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을 실패로 여기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멈춤은 과연 실패이기만 한 것인가? 그만이기만 한 것인가? 이제 우리는 멈춤이 역설적으로 사랑을 완성하고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인주는, 그대로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자신의 삶에 진도를 무의식적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그녀가 먼저 진도를 발견했고, 그보다 먼저 그를 위해 '유리병 대갈통'을 시전 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진도는 '고쳐주는 사람'이고 그를 통해 인주는 자신의 삶을 고쳐내고 지속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부름에 진도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말끔하게 닦아주고 인주는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환대'를 경험한다. 그 경험은 검정인 자신도 '햇볕을 쬘' 수 있고, 그럼으로써 환해질 수 있음 알게 된다. 그녀가 진도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그 '환대'의 경험이 자신을 앞으로도 환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인주는 진도의 옆에 있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지 않는가? 평생을 옆에서 자신을 '환대'해줄 진도이지 않은가? 진도 역시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인주는 어찌하여 진도와의 함께함을 멈춘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해보려고 이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 단락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전히 알 수 없다. 세상의 중요한 질문은 본래 답이 없다,라고 했던가. 다만 우리는 멈춤이 곧 끝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애씀이, 어쩌면 영원히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마음 한편에 적어놓자. 그리하여 어느 순간 나를 위해, 상대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 멈춰보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알아가자.


추신_나의 사랑도 '인주'처럼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으로 남기고 싶은 시절이다. 그녀가 나 아닌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면서, 나 역시 좋은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다시 시작할 수가 없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랄게' 20년이 더 지난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도 환하게 웃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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