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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트레이너의 연애 보고서

벤치프레스보다 사랑의 무게일지도

by 홍매화



트레이너 연애 보고서


헬스장의 하루는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조금씩 다른 사건들이 숨어 있다. 특히 트레이너의 연애는 인포데스크에 앉아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마치 시트콤 드라마 같다. 그 시작은 소소하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오는 회원 한 명은 유독 김 트레이너랑만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회원 수백 명을 상대하니까 눈치가 빨라진다.


김 트레이너가 그 회원님을 바라보는 눈빛은 딱 봐도 일반적이지 않다. 처음엔 "그냥 친한가 보다" 싶었는데 PT 스케줄이 아닌데도 자주 마주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 한 컵 받아가면서 잠깐 대화하고 운동 끝나고는 로비 근처에서 괜히 천천히 나가고. 심지어 어떤 날은 둘이 동시에 퇴근하더라. 우리야 입 닫고 있지만 내부 스태프끼리는 이미 다 눈치를 챘다.



"제발 조용히 지나가"


물론 트레이너 입장도 이해된다.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일하다 보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시선을 준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자기 관리를 잘하고 말투도 공손한 회원이면 더 그렇지. 문제는 다른 회원들 눈에도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 회원분이랑 말 많이 하신다" 이런 말이 회원님들 사이에서도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 인포데스크가 방패막이 된다. "저희 트레이너 선생님들은 다 친절하세요" 하며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속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면 먼저 이야기가 들리는 건 인포데스크 일 테니까.


가끔씩 둘의 연애를 시작했는지. 또 끝났는지 까지도 다 보인다. 갑자기 어색해진 인사, 사라진 눈 맞춤, 트레이너가 괜히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그럴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연애는 어디에서나 일어나지만 직장 안에서의 연애는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되어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은 바로 인포데스크 직원이다. "제발 조용히 지나가" 그게 헬스장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일이라는 걸.



그들의 이야기


헬스장에서는 몸과 마음의 변화가 스며든다. 나 역시 인포데스크로서 하루하루 다양한 사람들의 몸을 만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몸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바로 연애다. 헬스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체중을 줄이거나, 근육을 키우거나, 건강을 챙기거나. 그중에는 자신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다. 처음에는 모두 각자 목표에 집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눈빛은 변하고 있다. 서로의 운동을 돕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있다. 한 명은 자주 웃고 또 다른 한 명은 눈을 자주 마주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나는 느낀다.



벤치에서 사진을 찍고


첫 데이트가 헬스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라는 이면의 뜻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운동하는 동안의 대화는 대부분 몸무게의 이야기나 세트 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특별하다. 그들의 몸은 하나하나 근육을 쌓이듯 마음도 조금씩 쌓여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관계는 조금씩 변한다. 둘 중 한 명은 여전히 근육을 키우기 위해 진지하게 운동을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이제 운동이 아닌 상대를 의식하는 쪽에 더 집중한다.


헬스장 기구를 차지하고 벤치에서 사진을 찍고 러닝머신에서 걷기보다는 손끝에서 흐르는 감정을 더 느끼려고 한다. 처음에 운동을 시작한 이유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영원한 건 없듯이 그들의 관계는 이별로 끝나고는 한다.



벤치프레스보다 무거운 건 사랑의 무게일지도


첫 이별은 언제나 급작스럽다. 한 명은 "최근 바빠서요"라며 혼자 운동하러 오고 며칠 후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헬스장은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연애와 운동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며 인내를 배운다. 그 근육처럼 사랑도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빠르게 이루어지거나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면 결국 상처가 남는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헬스를 하는 사람들도 결국 지속성과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사랑도 벤치프레스처럼 올바른 자세와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폼보다 중요한 건 기초 자세이고 말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라는 사실을 매일 아침 헬스장에서 다시 배우고 있다. 오늘도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보다 더 무거운 건 사랑의 무게를 누군가는 들고 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어느 날 이 무게를 스스로 견디며 웃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트레이너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 3가지


항상 운동이 먼저다.

하루 중 운동할 시간이 가장 중요한 나에게 연애란 말 그대로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퇴근 후나 주말에 데이트할 시간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몸은 이미 지쳐 있다. "오늘은 운동 안 하고 쉬자"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단 한 번도 떠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하루를 그냥 보내면 몸은 퇴화할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오히려 연애에 집중할 시간조차 없다. 만약 데이트를 하자고 약속이라도 잡으면 "오늘은 그 시간에 자고 내일은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결국 데이트는 언제나 운동보다 우선시 될 수 없겠지.


그리고 운동에 열중하다 보면 내 몸을 돌보는 것조차 놓친다. 많은 사람들이 트레이너를 보고 "운동하는 사람이면 연애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몸이 완벽하니까!"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몸이 나의 전부인 듯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때로는 피곤하고 내 몸 상태가 최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보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연애를 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라고 느낀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채 누군가와의 관계에 들어가면 그건 그 사람에게도 불공평하지 않을까?



감정에 진지해질 시간이 없다.

운동을 할 때는 항상 내 몸의 한계에 집중하고 그 이상을 도전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인 부분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진지한 감정을 표현할 때 나는 그 감정에 제대로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상대방이 기대하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운동하는 방식대로 ‘빠르고 강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은 마치 고강도 훈련처럼 느껴진다. 감정의 깊이를 다룰 시간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관계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게 된다. 그런 나를 상대방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오지만 그곳에서 중요한 일은 운동뿐만 아니라 트레이너로서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직업 특성상 사람들과의 대화도 나누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 노력해야 한다.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나의 전념을 보장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업무가 방해가 될 수밖에 없겠지. 헬스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트레이너에게 호감을 느낀다 해도 나는 그 감정을 직업적인 거리 두기를 하고 지켜보게 된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의 연애를 보고 있으면

끝으로 헬스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점점 더 내 연애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연애를 하면 피곤하다" "그 사람과 잘 맞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들의 연애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일도 많다. 그들에게 충고를 하고 조언을 해주는 데에 익숙해져서 내 연애에서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연애가 얼마나 복잡한지 얼마나 감정적 소모가 큰지를 매일같이 보고 나면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연애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다. 트레이너는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연애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법이다. 아마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보고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면 언젠가는 연애를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고 오늘도 몸과 나의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간다.



결국 트레이너로서의 삶은 자기 관리와 인내의 연속이다. 트레이너는 하루하루 몸을 돌보며 회원님들의 변화를 돕는다. 그만큼 연애는 트레이너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이미 벅차고 때로는 감정을 나누기보다는 운동을 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고 연애를 할 여유를 갖게 되는 날. 그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가꾸고 나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 연애는 그저 운동처럼 꾸준함과 성실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지금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지금은 연애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지만 나를 위한 여정이다. 트레이너로서의 삶도 연애도 결국 준비되어 있을 때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나의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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