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직전, 매출표 점검표를 뽑았다. 2,034,000원. 보통 평일엔 절반도 넘기기 어려웠던 금액이다.
그 숫자를 보며 이상하게도 뿌듯함보다 오늘 하루 고객들이 정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먼저 왔다. 팔았다는 생각보다 전달했다는 느낌. 판매 업무의 본질이 어쩌면 거기에 있다는 걸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오전 11시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고객이 들어왔다. 처음엔 가볍게 둘러보고 나가려는 눈치였지만 러닝화 코너에서 잠시 멈춰 제품을 꺼내 들었다. "발볼이 넓으신 편이면 이 엘리트 모델이 좀 더 편하실 거예요." 내가 조심스레 건넨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신어보시던 고객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늘 마라톤 참가했는데 생각보다 페이스가 안 나와서요. 신발 때문인가 싶어서…" 그 한 문장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아, 오늘은 제대로 도움드릴 수 있겠다.'
결국 그 고객은 러닝화뿐만 아니라 기능성 티셔츠, 타이츠, 캡 모자까지 풀착장을 맞춰 사갔다. 결제 후 그는 도움 많이 됐어요.라고 말하며 나갔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점, 6명 정도의 고등학생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단체 방문에 직원들끼리 눈빛을 교환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운 긴장감이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에게 "야, 이거 입으면 스쿼트 더 잘 될 것 같지 않냐?" "이거 할인되나요?" 라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나는 최대한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춰 설명했다. 어떤 운동은 어떤 라인의 옷이 더 적합한지. 그 짧은 순간들은 작은 강의 같았다. 결국 그들은 단체로 쇼핑백을 들고나갔다. 그때 찍힌 매출만 80만원. 오후가 되기도 전에 POS 화면에 숫자가 쑥 올라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마지막 한 방은. . .
그날의 클라이맥스는 닫기 30분 전 찾아왔다. 헬스장 회원이라는 30대 여성 고객이 들어와 "언더아머 브라가 그렇게 좋다던데… 사실인가요?" 나는 웃었다. "한 번 입으면 다른 브랜드로 못 돌아가는 분들이 있긴 합니다." 스포츠 브라는 지지력과 잘 맞는 사이즈의 제품으로 피팅을 도와드렸다.
그분은 말 그대로 감탄한 듯 거울을 바라봤다. "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요?" 그 한마디와 함께 스포츠 브라부터 레깅스, 양말까지 세트로 담기 시작했다. POS기에 찍힌 금액이 200,000원을 넘었다. 나는 은근히 오늘 매출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언더아머 매장에서 일했던 시절,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하루가 있다. 오늘은 다르다는 걸. 아침 오픈 준비부터 묘하게 따라다니던 날.
기온은 높았고, 인근 체육관에는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인지 선수들과 관람객들로 붐볐다.
평소처럼 음악을 틀고 마네킹의 옷깃을 다듬는데 유독 로고가 반짝인다. "오늘 잘 팔릴 것 같은데요?"라고 농담처럼 말하는데 그 말이 예언이 될 줄은 몰랐다.
브랜드 로고가 박힌 티셔츠도, 쌓아 놓은 재고도, 매출표의 숫자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흐려지지만 그날 고객들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또렷하다. 어떤 날은 매출이 역대급으로 저조해서 기억에 남는다면. 또 어떤 날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서 오래 남는다. 그날은 두 가지가 동시에 찾아온 날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언더아머에서 일했던 시간들이 시간이 지나서도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일 깨워주는 기준점 같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