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오는 진상 고객의 날
언더아머 매장에서든 여러 매장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참 많이들 만난다. 그중에는 오늘 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 업계에서는 이런 고객을 진상 손님이라고 불린다. 별 것 아닌 것임에도 성격이 유난히 까다로운 고객들. 전에도 이런 기억이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강도가 높다.
PM 2:10 — 문이 열리며 시작된 기운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온 남자는 시작부터 얼굴이 굳어 있었다. 눈썹은 찡그리고, 걸음은 재빠르고, 매장 둘러보기보다 찾아와서 말하려는 목적이 뚜렷한 표정. 카운터 앞에 서자마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지난번에 여기서 산 바지 기억하시죠? 이거 세탁 한 번 했는데 변색이 됐어요. 이거 잘못된 제품 아니에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다. "확인 도와드릴게요. 혹시 영수증 가지고 오셨을까요?"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마치 내 질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영수증이요? 안 받은 거 같은데. 그런 걸 누가 다 챙겨요? 당연히 매장에서 책임지셔야죠."
PM 2:14 — 시작되는 정신적 체력 테스트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구매 확인이 필요해서요. 카드로 결제하셨으면 결제 내역으로도 확인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바지를 꺼내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렸다. "이거 봐요. 내가 입던 방식 그대로 입었는데 이렇게 변형된 건 제품 문제지, 제 문제가 아니잖아요."
속으로는 세탁 방식이 문제일 수도 있고, 제품 자체는 변형 없는 라인인데...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직원이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컴플레인이 들어오기에. 그래서 느린 호흡을 유지하며 말했다. "한번 상태 확인해 봐도 될까요?" 바지는 세탁 표시 라벨이 심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분명히 입었던 흔적. 그리고 방금 삶아낸 듯한 단단하게 굳은 촉감. 누가 봐도 고온 세탁이 원인이고, 몇 번 입은 흔적이다.
PM 2:22 —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사람
나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손님, 제품 자체의 원단 특성상 고온 세탁은 변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온 세탁 권장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하지만 그는 말을 끊었다. "아니,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거 제가 만든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그 순간, 매장 안 공기가 얼어 있었다. 다른 매장의 직원들이 이쪽을 바라보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거 당연히 새 걸로 바꿔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브랜드는 다 해주던데? 왜 여기만 그래 " 다른 브랜드에서는 다 바꿔준다니. 일명 진상 손님이 쓰는 마법의 단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브랜드들도 안 해준다.
PM 2:30 — 깊은숨 하나
나는 다시 한번 설명했다. "교환 정책이 규정으로 정해져 있어서요. 세탁으로 인한 변형은 제품 불량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규정, 규정, 규정! 왜 손님 말은 규정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그 순간에도 고객 이름도 모르는 매장 직원이라는 이유로 감정을 삼켜야 했다. 그래야 매장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으니까.
PM 2:34 — 마지막 대사
결국 그는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자 바지를 구겨 넣듯 쇼핑백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다시는 여기 안 온다. 친절한 줄 알았더니. 그리고 자동문이 세게 흔들릴 정도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그의 흔적이 매장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
PM 2:40 — 조용해진 자리에서
나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카운터에 기대 서 있었다. 이해받지 못한 느낌, 억울함, 허탈함 같은 감정들이 몸에 들어왔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오늘의 나쁜 기분을 여기에 두고 간 것뿐일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이 일에서 그걸 다시 치워야 하는 역할인 거고. 조금 뒤, 매장은 다시 평범한 오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음악은 흐르고 조용히 옷을 고르는 손님들이 들어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옥상에 올라가서 다시 다짐한다.
오늘의 진상 손님도 결국 매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