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아머 매장에서 일하던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포스 시스템을 열었는데 평소보다 공기가 다르다. 그 이유는 행낭을 보낼 지시 내역이 눈앞에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20~30개 정도의 지시 내역이면 좋았는데 이 날은 다른 매장에서 필요한 지시 물량이 많았나 보다.
오늘 매니저님은 자리를 비웠다. 결국 지시 행낭 산은 내 몫이고, "오늘은 나랑 싸워야겠네." 혼잣말이 유일한 위로의 말이었다.
오늘은 나 혼자 근무하는 날이었다. 보통은 두 명이 나눠서 하는 일인데 인원이 빠지면서 내 책임이 되었다. 매장 불을 켜고, 음악을 틀고, 계산대를 정리하고, 유니폼을 고쳐 입는 사이에도 내 머릿속은 행낭 생각뿐. 반팔티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오늘 밥 먹기는 글렀다. 조졌네."
하나를 들춰봤다. 신발 박스가 세 개, 티셔츠 묶음, 모자 몇 개, 그리고 지시내역 100개. "서울 00점 이동" 짧은 글자 몇 개가 내 일정을 결정지었다.
행낭을 쌓는 일은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 상품을 찾고, 재고를 이동 처리하고, 바코드가 맞지 않으면 다시 확인을 하고, 박스에 담는다.
손은 점점 테이프에 눌리고, 스캐너는 어느새 내 손보다 뜨거워진다. 매장 음악은 흘러나오는데, 그 멜로디가 마치 나를 조롱하듯 밝기만 하다.
매장은 고요하고, 음악은 이미 끊겨 있었다. 조명 아래 쌓여 있던 행낭들이 이제는 말끔히 박스로 핸들카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자리. 그 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혼자였지만 그래도 다 해냈네.
그제야 옥상에 가서 라이터를 켜고, 담배 하나를 꺼내고 연기를 입속으로 내뿜는다.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빛만큼은 묘하게 또렷했다. 손끝의 테이프 자국을 쓸며 생각했다. 내일도 행낭은 오겠지. 이 반복 속에서 내가 단단해지고 있는 과정이니까.
다른 매장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잠시 들렀다. 힐끗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 박스가 왜 이렇게 많아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표정은 이미 지쳐 있었다. "몰라. 오늘은 나 혼자라서… 내가 다 해야 돼." 그 동료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헐, 진짜요? 혼자 힘들겠다." "응, 이미 포기했어." 둘 다 잠시 웃었지만 웃음 끝에는 어쩐지 연민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파이팅이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파이팅이라니. 해가 기울 무렵, 마지막 행낭의 테이프를 붙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끝났다." 매장은 공기마저 정리된 듯 고요했다.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그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다 했다. 그 사실 하나가, 묘하게 나를 버티게 했다.
지시 행낭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나만의 속도로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