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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May 07. 2019

9. 외할아버지

손재주를 물려준 그에게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동심의 기억이다. 잘은 모르지만 가족들은 그 사람을 크게 반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재능에 근거해서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반길 사람은 없으니깐.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가 마냥 좋았다. 그는 나를 아껴주던 사람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전단지로 귀결된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끼적이기를 좋아하는 나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항상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전단지를 모았다. 뒷면이 하얀 종이만 강박적으로 수집했다. 그가 살던 4870번지에는 항상 한 뼘이 넘는 종이 뭉치가 쌓여 있었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감사함도 모르고 그저 볼펜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나름의 잡다한 꿈을 키웠다. 무심한 듯 나를 흘기며,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모습은 많은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는 다혈질에 염세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욕을 했던 모습이 나도 기억이 나지만, 뇌리에 박힌 것은 그의 미소이다. 그는 항상 나를 보면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 중 한 명인 나의 어머니. 그녀는 그의 막내딸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 그녀는 그를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가 그처럼 되길 바라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나를 타일렀다. 그리고 손재주가 좋으면 결국은 고생하게 된다고 사족처럼 덧붙였다. 아마도 젊은 시절, 많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재야에 남은 자신의 아버지를 탓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닮고 말았다. 적당히 재능이 있으면서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머리가 좋으면서 적당히 노력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특유의 거만함 혹은 자신감마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을 개탄한 적이 있다. 어정쩡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냐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결과로 남은 것은 조각난 자신감뿐이었다. 당시 나를 만나던 연인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가 하찮게 보는 자잘한 재주조차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냐고. 너는 그런 감사함도 느끼지 못하냐고 말이다. 생각보다 많이 망가졌던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들을 신경 쓸게 뭐냐고 반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로 옮기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대답이다.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러던 내가 꼼지락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간다. 기계에 밝았던 할아버지처럼은 아니지만, 나는 문과적으로 사부작 거린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든다. (예전만큼 주기적이진 않지만..) 3D 그래픽이나 VR 말고는 문과생이 제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콘텐츠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이런 소소한 재능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보면 결론은 역시 그로 귀결된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구독자이기도 하다. 그녀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욱 노력한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게서 또다시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당시 나는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항상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의 마지막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리다는 이유와 함께 여러 변명이 있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결국 내 탓이라 마음이 쓰리다.


지금도 그 순간이 후회된다. 그렇지만 마냥 후회만 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에 오늘도 발버둥 친다. 그가 전해준 나의 재주들을 묵히지 않고 살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다양하고 자잘한 재주들이, 나의 삶과 주변의 삶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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