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같았기에 후회는 없는
길에서 만난 L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2016년 7월 4일 신촌역 1번 출구 근처에서 만났던 한 여성이다. 당시 나는 인턴 첫 출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잘못 타서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날씨는 7월 초의 불볕. 금융권의 회사이다 보니 긴 팔 드레스 셔츠에 슬랙스, 그리고 가죽 로퍼까지 신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인도 길바닥의 개처럼 헥헥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을 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보였다.
나는 실패보다는 후회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로 달려가서 물어보았다. 연락처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는 있는지 말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망설이며 수줍어하지만 할 말을 다 하는 내가 신기한 눈치였다. 멈칫하다가 이내 미소를 띠며 11자리 숫자를 나의 휴대전화에 입력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L과 나의 관계는 애매했다. 한국 사회에서 쉽게 용인되는 소개팅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만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도 아니었고, 연인은 더더욱 아닌 애매한 관계였다. 그냥 연락하던 지인이었을 뿐이다. 연락을 하다 보면 웃음이 끊이지 않기도 했고, 틈틈이 정적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연락이 끊길까 조바심이 들었고, 그러한 조바심이 궁극으로 치달을 때쯤 우리는 첫 데이트를 했다.
막상 만나보니, 나의 기억과 카톡 프로필 사진 속의 모습보다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텍스트로 이야기할 때보다 대화도 잘 통했다. 그래서 사귀는 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한 2주 정도 만났을 때인가. 그녀는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다. 차츰 마음을 열어가고 서로에게 빠져가는 줄만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놓아줄 수밖에.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내는 줄만 알았다.
시간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무심히 흘렀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턴 생활을 하며, 나름 이것저것 스펙을 쌓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하루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픈 날들이었는데, 묶어서 생각해보면 수챗구멍에 물이 빠지듯 지나갔던 시간들이다. 그러다 8월 15일이 되었다. 그날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을 했다. 여행 재밌었냐고.
이 문자 하나 보내는 데에 들었던 고민이 모래알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해운대를 가득 채웠을지도 모른다. 헤어진 뒤 동교동에서 스쳤을 때에도 웃으며 지나갔던 나였다. 그저 모든 걸 기다리고 참고 있던 나였기에 몇 글자를 보내는 게 너무도 힘들었다. 후회를 하려던 차에 답장이 왔고, 그녀는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남동의 한 술집에서 다시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8월 중순부터 우연히도 다시 만났던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대부분 행복했고 틈틈이 괴로웠다. 같이 소풍을 가서 밤늦게 까지 떠들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로 서로 죽일 듯 싸우기도 했다. 잠깐이나마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녀의 본가가 있는 춘천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냥 또래의 여느 연인들과 흡사했다. 그러던 11월,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상황 탓을 하던 그녀였다. 이직과 취직을 준비하는 각자의 상황에서 마음 쓰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이 주는 무기력함에 가슴이 아팠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몇 개의 기업에 붙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번에는 이유나 변명도 없었고, 그저 연락하지 말라고만 했다.
차갑게 나를 끊어냈던 그녀에게 가끔씩 연락이 왔다.
처음 연락에는 내가 바로 뛰어갔지만, 그 뒤로는 그러지 않았다. 신입사원 연수 중에는 그럴 수 없었고, 그 뒤로는 친구들이 나를 말렸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콩깍지가 벗겨졌는지, 미지근한 온도의 대답을 하면서 연락의 불씨를 희미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서서히, 그리고 억지로 감정의 농도를 옅게 만들었던 시간들이다.
그렇지만 마음이 약한 죄로, 2017년 7월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담담한 상태였다.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팔아댔다. 그리고는 울먹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이 있었고, 적극적이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나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나와 L은 세 번 만났다. 세 번째 만남을 후회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 만남이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미련이나 후회를 갖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그녀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혹자가 보기엔 굉장히 질척거리는 무의미한 이야기일 것이다. 결과만 본다면 동의하겠지만, 그 과정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포장해도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과 끝은 아니었지만, 나와 L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노력을 쏟았음에도 망가지는 관계의 무력함보다, 나는 그 포인트에 집중했다. 타이밍이나 인연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회없이 모든 걸 불태웠다, 정도가 나의 마음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이후의 나의 마음가짐이다. 나는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편이다. 그 뒤로는 연애가 주는 따스함보다는 헤어짐이 주는 슬픔에 집중했고, 그래서 항상 불안해했다. 지나고 보니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주는 상처가 쓰라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후의 관계들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고 속삭이지만 너무나도 연약해서 바스러질지 모르는 약속들, 그리고 언젠가 깨질지 모르는 오늘의 행복에 대한 불안감. 이 두 가지가 주는 불확실성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그걸 견디고 티내지 않는 담담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