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권태기가 아직도 시리다
"이 문제가 별거 아닐 수 있다는 것, 나도 잘 알아.
그렇지만 오빠도 나도 이걸 해결할 여력도 노력할 마음도 많이 없는 것 같다."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우리 그만 보는 게 좋겠지..?"
"그동안 고생 많았어, 수고했고 미안해."
3년 여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날이 적당하던 2015년 4월 8일 종로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말이지 소소한 일로 싸웠을 뿐인데, 우리는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결국 이별했다.
식어가는 연애의 열기에 대해서 꽤나 오랫동안 느껴왔기에, 서로가 관성으로 습관적인 데이트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대역 지하에서 스치듯 만난 행인이 인연으로 연인이 되었다고 엄청난 의미 부여를 해왔는데도, 나는 그렇게 무뎌져 있었다.
당시엔 깔끔하고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후폭풍이라고 부르는 것은 10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찾아왔다. 물론 그동안도 오랜 시간 내 옆을 지켜준 연인이 없다는 것은 알았고 익숙지 못하긴 했다. 일어나면 당연히 와있던 카톡이 없었고, 늦도록 술 마시면 걱정해주던 투정도 없었다. 아쉬웠지만 동시에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에게 찾아온 것은 미안함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나쁜 놈이다.
순전히 착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못한 어정쩡한 찌질이다. 못된 말을 지껄여 놓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으면서도, 뒤에선 후회하면서 눈물짓는다. 앞으로는 다시 안 볼 것처럼 쌩 까놓고 주말이 오기 전에 밥 먹자는 말을 던지는 편이며,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해놓고 이내 걱정되어 타고 간 택시 번호를 적어서 문자로 보낸다. 좋을 때는 고양이 같은 츤데레라고 하지만, 나쁠 때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 헷갈리게 하는 놈이다.
나는 생각보다 유약한 사람인 것 같다. 겉 보기에는 안 그렇지만. 그래서 의도와는 다르게 저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친구든, 연인이든 처음에 나를 알아가는 사람들은 이걸 장점 혹은 매력이라고 봐주는 것 같다. 종잡을 수도 없고, 쉽게 질리지도 않고, 그냥 착한 순둥이보다는 재미도 있을 테니 말이다.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는 단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나의 장점은 양날의 검이었다. 특히 시간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 3개월을 혹은 3년을 만나도 그 지점은 결국에 찾아왔다. 소위 나의 매력이라고 불리던 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어김없이 상대를 지치게 만들었고, 나는 이별을 했다.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친구들을 붙잡고 술을 마셨다. 경의선 숲길 공원이 한창 공사 중이던 2015년, 나는 마포 지역 포장마차의 단골이 된다. 취해서 전화하거나 'ㅈrㄴ1..?' 같은 카톡을 남기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친구들에게 징징대며 나는 견뎠다. 그렇게 그때의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과 걸지 못한 전화, 보내지 못한 편지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기억이 흐려졌을 때, 나는 방을 정리하다가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노란 몰스킨 노트였다. 노트를 펼쳤을 때 가장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14년 어느 날 내가 썼던 글이다.
'오늘도 그녀와 싸웠다. 험한 말을 쏟아 냈다. 나는 오늘도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고자 한다.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반성하고 같은 실수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두세 달을 이어가던 나의 일기는 그 해 어느 여름에 멈춰 있었다. 스스로의 모난 점을, 일기라는 사포로 문지르고자 하던 노력은 너무도 게을렀다. 일기는 단순히 내 마음을 잠시 편하게 하는 합리화 포인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2015년에도, 2016년에도, 2017년 그리고 2018년에도 나는 비슷한 부류의 실수를 저질렀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회사 생활을 버텨내면서 나는 더 모나고 날이 선 사람이 되었고, 상대에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아끼는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는 방법을, 권태기를 극복하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을 모른다. 상처를 주지 않고자 조심해서 행동하면 어느덧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린다. 더 나아진다기 보다는 애매한 더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상대에 맞춰서 변해가는모습이 스스로만의 장점조차 잠식한다.'는 코멘트도 들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끊임없이 발버둥은 쳤지만, 얼마 전의 이별을 되돌아보니 결과론적으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자괴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3년을 만난 그녀에게도,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났던 인연들에게도. 실수는 자주 하는 한심한 사람이지만, 두세 번씩 반복은 안 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앞으로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쓴다.
말을 줄이고, 글을 늘리고자 한다.
글을 쓴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글이란 생각이나 말보다는 강하고 희석되지 않는 하나의 기록이라는 것이 의미있다.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희석되는 거의 모든 것들과는 다르게, 글은 쓰여진 시간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말로써 뱉어 낼 수 있는 것을 미리 차분하게 고민해본다는 의미가 한 가지 이유고,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써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약속을 하고자 하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