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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pr 22. 2018

6.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리치고 싶다

작은 생명들이 죽어 가는 소식을 많이 듣는다. 동물농장 746회에서는 화살에 맞은 고양이 이야기가 전해졌다. 고양이 휴게소라고도 불리는 충주의 물레방아 휴게소에서는 고양이들이 독극물을 먹고 죽었다. 가깝게 연희동에서는 누군가가 이연복 셰프가 챙겨주던 길고양이를 때려죽인 뒤 버려놓았다. 




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잔인한 일이 흔히 발생하는 것 일까.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기저에는 혐오 문제가 존재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혐오로 가득하다. 특히 약자에 대한 혐오와 이를 바탕으로 한 폭력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다. 농담으로 가난을 조롱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은 인터넷 곳곳에 만연하다. 심지어 나도 장난 삼아 ‘ㅇㅇ충’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스스로도 혐오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것이다. 혐오라는 것이 가져오는 갈등이나 폭력적인 양태를 많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도 말이다. 


오래 들려오던 말이고 단순한 말인데, 동시에 어려운 말이기도 한가보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의 치안은 다른 나라들보다는 촘촘한 편이라 총기난사와 같은 대규모 혐오범죄가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처벌받지 않으면서도 혐오를 폭력으로 해소할 희생양을 찾는 것 같다. 그렇게 약자 중의 약자인 길 위의 생명들은 쉽게 화풀이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귀찮거나 거슬린다고 다른 생명을 학대하고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생명에게 휘두르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생명을 혐오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에 굉장히 위험하다. 따라서 작은 생명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학부시절에는 소소하게 교내의 고양이들을 후원하는 ㅇㅇ대고양이모임 활동을 하고, 4년 전에는 길고양이를 데려와서 키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렇게 입양에 동참해달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고 시간을 쪼개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길고양이나 다른 거리의 생명들에게 밥을 주라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혐오만 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슬려도 욕하고 발길질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다른 생명체를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사람들이 작은 생명부터 존중하는 자세를 갖게 되면 행복할 것 같다. 이는 혐오의 사회를 존중으로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소소한 시도이자 철학일 테니.





2016년 학부 막바지 전공 수업 시간에 썼던 글이다. (그래서 어디에 분류할지도 고민했는데, 길가며 만나는 동물들과의 기억도 인연이기에 '인연을 쓰다'로 분류했다.) 시간이 지나도 아직 사회는 크게 변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뉴스나 신문의 기사들을 보면 더 심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단순한 혐오는 길거리의 동물들, 여성, 비정규직, 아이들 등 사회적 권력의 상대적 열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횡포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재벌가의 갑질만을 규탄하고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행하는 상대적 권력에 의한 갑질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내가 당한다고, 내 눈에 거슬린다고 다른 대상을 혐오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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