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좋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이 좋다.
어렸을 때는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동네를 뛰어다닌 적도 있다. 누가 보면 미친놈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비를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폭우나 태풍이 주는 피해는 싫다. 바지 밑단이 젖고 신발이 축축해지는 것 또한 별로다. 그래도 그 날이 주는 특유의 정취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문을 열고 집에서 책을 읽는다. 별다른 음악을 틀어놓지 않더라도, 수 천 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땅을 마주하는 그 소리가 공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비 냄새도 좋다. 약간 눅눅하기도 하지만 더 큰 기쁨을 주는 촉촉함을 킁킁대면, 마음이 안정된다. 긴장이 누그러드는 걸 보면, 나에게 비 냄새는 신경안정제 같은 느낌이다.
비가 내릴 때 마시는 술은 또 다른 덤이다. 예전엔 막걸리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그러지 않다. 맥주도 소주도, 아니면 출신지를 잘 모르는 외국의 술도 좋다.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해서 사람들을 자극한다는 전이 안주가 아니어도 좋다. 뜨끈한 국물도, 숯 냄새를 품은 꼬치도 상관없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한 잔 기울이는데, 빗소리가 분위기를 더해주니 행복해지는 것이다. 추가적으로는 술을 마시면 흥이 오르는 나인데, 비 내리는 날의 운치는 그러한 흥이 너무 과하지 않게 다독여준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비는 나에게 여명 808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비가 조금 싫어질 때도 있다.
비는 가끔씩 차분함을 과하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너무 생각이 많아지거나 감성적인 모습이 극대화된다. 헤이즈의 노래처럼, 비도 오고 그러니 네 생각이 난다는 말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게으름 피우기에는 바쁜 삶인데, 빗 속에서 침잠하다 보면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몇몇은 이렇게 반성하는 나의 모습이 장점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다 보면 버거울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럴 때마다 친구나 당시의 연인을 만났다. 혼자 있는 것이 오히려 고민에서 회피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따끈한 밥을 먹고 이가 시릴 정도로 차게 식은 술을 마시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대화는 즐겁다가 슬프다가 웃기다가 진중해진다. 그때의 연인들은 없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은 10년 가까이 지난 순간에도 나와 함께 길을 걸어간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한 살 한 살의 무게감을 느끼면서 비가 올 때 혼자 있으려고 노력한다. 나름의 고뇌를 피해 술자리로 피신하고 싶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스스로의 피곤함을 주변에 전이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인간은 어찌 됐건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이유를 종합하자면, 회피에 대한 나의 관점이 틀렸다는 것이다.
내가 인생의 선배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그리고 자주 조언을 구하는 형 J. 이 두 사람은 모두 혼자 차분하게 감정을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홀로 침잠하며 삭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표현이나 방식은 다르지만, 이면의 의미는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직 부족하지만, 잔인할 정도로 고요한 외로움과 대면해보고자 한다.
차분함과 격정적임은 반대말일 수도 있지만, 비는 그게 아님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비 오는 날이 주는 약간의 차분함은 오히려 고민을 고뇌로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게 남은 수십 년 동안, 나는 몇 천 번의 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물방울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