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욕구와 용기에 대하여
바야흐로 '大꼰대의 시대'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꼰대가 많다. 우리 사회 내에서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단군 이래 끊임없이 존재해온 일이지만 요즘에는 그 양태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예전에는 일정 나이나 직급 이상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면, 이제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에 자리하던 분들은 물론이고, 소위 ‘꼰 대 가르송’이라고 불리는 젊은 꼰대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가까이에서도 그러한 참사는 잦다.
나의 친구 W는 그러한 세계의 중심에 서있다. 곧 2년 차 직장인으로 거듭나는 그는, 명동 길 한 복판을 거니는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가 고개를 저을 만한 꼰대의 부하 직원이다. 그가 흔히 듣는 말들은 대략 아래와 같다고 한다.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남아서라도 하고, 주말이라도 해야지 뭐야?"
"8시에 퇴근하는 건 너무 이른 것 아니야?"
"나는 네 나이 때에 안 그랬는데, 넌 무슨 생각이야?"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팀장은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사람이다.
그들의 논리는 정말이지 난해하다.
다시 말해 본인이 일을 열심히 했던 것과, 후배 직원이 열심히 하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거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업무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것인데, 무작정 들이붓는 업무가 뭐 그리 중요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머리로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흡사 한국어가 아닌 것으로 보일 정도로..) 백번 양보해서 꼰대 본인은 다른 가치들보다 일을 애정 하는 워커홀릭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되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주변 친구들과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러던 중 가장 와 닿는 이야기가 Y의 이야기였다. Y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정 욕구 아닐까?
그녀는 일로써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과하다 보면, 그게 과로의 챗바퀴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한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몇 마디의 인정은 꿀처럼 다가오기 마련일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야근을 불러오는 방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 맞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외로움이, 그 꼰대 (혹은 꼰대 유망주, 이하 꼰망주)를 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그녀의 논리는 높은 확률로 맞다고 할 수 있다.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불러오는 무한 근로의 늪이 존재하고, 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생존을 배운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도 하나의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옥죄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무시하고 본인의 인정 욕구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기가 만족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거다. 인정 욕구를 없애기 위해선 남에게 공헌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 된다. 상대방의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남을 위한 일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거기서 용기가 생기는 거다.
인정 욕구에 얽매인 사람이 갖는 폐쇄성과 이기심에 대해, 작가는 책에서도 인터뷰에서도 줄곧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위의 맥락을 꼰대에 적용해서 살펴보았다. 꼰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정 욕구를 끊임없이 전이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정이란 인간이 가장 원하는 가치라고들 한다.
아무래도 사회적인 동물의 특성상 관계에서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비치길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인정은 어떤 방향으로 추구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의 대화와 스스로 내가 감내하는 꼰대질, 그리고 나름의 독서에서 내가 추론해낸 결과는 인정의 방향을 내부로 향하게 하자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인정과 함께 어울려 다녀야 하는 단어는 '욕구'가 아니다. 인정과 함께 다녀야 하는 단어는 오히려 '용기'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 그리고 감추고 싶은 일들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 말이다. 본인이 꼰대이면 꼰대라고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면 된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말실수를 하게 되면, 잠시의 체면을 생각해서 눙치기보다는 사과하고 앞으로 조심하면 된다.
낯선 방법이니 약간 아프겠지만, 잠깐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내 주변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모두가 말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삶을 관조하며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는 말이다. 그저 스스로에 대해 약간은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본인과 주변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적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남북통일이나 4차 산업혁명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마음가짐과 용기가 오히려 더 세상을 청정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 지향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모두가 용기를 내는 세상을 기원하며. 나부터 화이팅.
커버 이미지 출처: 그림왕 양치기 그림 中 ‘우리 땐 말야’ 인터뷰 출처: 조선일보 저자 인터뷰 (뉴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