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물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지만
다사다난했던 2018년이 며칠 전에 끝났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세기도 힘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365일을 보냈다. 막상 그 하루하루들은 극도로 즐겁기도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달력 뭉치뿐이다. 그래서 모두가 (특히 인싸들이) 연말연시에 하는 것으로 사료되는 연말 결산을 해보려고 한다. 며칠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지나가버린 시간의 편린을 아예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보고자 한다.
소중한 시간들과 그 속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2018년의 각 분야 BEST와 그와 관련된 이미지, 그리고 한두 마디의 글로 어떤 의미로든 화려했던 20대의 마지막 기억들을 되새기고 싶다. 혹자는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다이내믹해서 나도 주변도 조금도 버거웠던 무술년의 기억들을 이 글로 정리해볼 것이다.
인도, 그중에서도 라다크라는 고즈넉한 공간에서 읽어서일까.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롭다. 매번 곱씹어 읽는 피천득 님의 <인연>과 같은 여운이 일어난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돌이켜보게 해 주는 책이라 올 해의 책으로 꼽는다.
인간의 본질, 그리고 그 속에 스며있는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영화이다. 단순한 홍콩 액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고민을 주는 심오한 꺼림칙함(?)이 있다. 물론 칭찬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그 느낌이 좋아서 1~3편을 세 번 정주행 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 편이고, 미드는 시트콤 위주로 본다. 그런 나에게도 이 드라마는 새로웠다.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악의 정점에서 모든 걸 거머쥔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무상이다. (쉬운 건 하나도 없다.)
올해에는 마포구 지박령 치고는 많이 돌아다녀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도 생각났고, 바간의 파고다들이 노을에 빛나는 모습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최종 결정은 인도 라다크 지역에 있는 판공초이다. 결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자연의 압도적인 매력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된 곳이고, 은하수를 육안으로 처음 목격한 곳이며, 이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돈도 시간도 여유로워지면, 라다크의 사과와 살구가 익는다는 9월쯤 그곳에 돌아가고 싶다. 지그멧과 겟쵸 가족도 그립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본인은 마포구 지박령이다. (한때는 분당 지박령..) 그만큼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는 편인데, 주변의 권유로 을지로와 충무로의 맛집에 진출해보았다. 그리고는 그곳의 바이브에 흠뻑 빠졌다. 물론 편하게 친구들과 시켜먹는 교촌치킨, 가족들과 함께 먹는 회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 이것은 뉴트로라고도 불리는 새로움이어서 BEST로 꼽아보았다. 나는 동원집 감자국에서 을지로 도루묵으로 이어지는 그 코스를 시작으로 여러 노포를 탐방했다. 하단 우측에 있는 충무로 황소집 도가니찜도 아직도 뜨-끈하다. 나이 먹어가면서 국물에 이렇게 심취하게 된 것도 상큼한 충격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게임과 글쓰기, 그리고 영상 편집을 편히 즐길 수 있게 도와준 키보드가 올해의 물건이다. 큰 마음먹고 산 커세어 적축 키보드인데, 타건감도 적절하고 소리도 너무 과하지 않다. 그러면서 적절하게 손가락에 감기는 듯한 기분도 좋다. 뭔가 계속 글을 쓰고, 작업을 하고 싶어 지는 기분이랄까. 20만 원 정도의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약간은 버겁게 했던 결정이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올해 최고의 이벤트는 퇴사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쌓여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로 하여금 진지하게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계기이기 때문이다. 퇴사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퇴사를 하면서 꿈과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여행도 다녀왔으며, 나름의 창작활동들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뒷일에 대한 준비가 다소 부족했던 것은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결단력과 더불어 꼼꼼한 계획까지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긴 말이 필요 없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미얀마 비어가 있었다. 세계 맥주 콘테스트에서 1위를 할 만큼 수준급의 맥주임에도, 한 잔에 한화로 800원 정도 하는 가성비까지 갖추고 있다. 다시 미얀마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말을 줄이고, 글을 늘려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브런치였다. 소소하게 생각 정리용이었는데, '서른'에 대한 글을 쓴 이후로 상당히 성장해버렸다. 갑작스러운(?) 성장에 약간의 혼란도 있었고, 재취업 준비로 인해 바빠서 소홀한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초심을 찾고 이제는 항상 했던 대로 다시 걸어가 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얻게 된 좋은 습관들도 있고, 소중한 사람들도 있으니깐.
나름 열심히 불살라 온 것 같은 한 해인데, 후회가 남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운동이다. 본래 운동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2018년처럼 운동과 멀고 술과 가까웠던 적은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옆으로 많이 성장하게 되어서 마음이 아프다. 끊지는 못하겠지만 술을 조금 줄이고, 운동을 다시 시작해보는 쪽으로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살을 뺀다는 엄마와의 약속도 이번에는 꼭! 지키기 위해서.
운동의 꾸준함과 더불어 다른 꾸준함에 대해서도 약간 첨언하자면, 재취업 핑계로 11월쯤부터 브런치와 유튜브에 대한 열정이 다소 사그라든 것 같다. 그때는 그럴싸한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부끄러운 합리화였다. (퇴사 여행 보고서도 마무리 못했으니.. 분발해야겠다.) 앞으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만의 패턴을 찾아보려고 한다. 직장인이면서도 스스로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조금 다른 직장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냥 그저 그런 톱니바퀴가 되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