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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an 15. 2019

우리는 그래도 출근을 한다

가끔은 배려와 여유가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 중 좋은비님이 있다. 그의 책 <서른의 연애>를 읽고, 스스로의 관계를 돌이켜보고 브런치에 대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러하다. 한 남자의 소중한 기억의 편린을 조심스럽게 모아 담은 글들은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그러한 그의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이 바로 아래의 글이다.



사회생활에서 처음으로 이별을 겪은 후배에게 선배로써 전하는 따스하지만 담담한 이야기. 그 여운의 여울은 생각보다 오래 내 마음속에서 일렁였다. 분명히 글자를 눈으로 본 것인데, 귀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오고,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일을 해보고,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지향하며 걸어 나간다는 것은 회사를 다니는 것과 관계없이 동일하다.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같기 때문이다. 일이나 성과로 인정받고 남들을 밟고 승진하기보다는, 조금 더 그럴싸한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는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한 나에게 있어서
회사를 다니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출근이다. 


출근이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삶을 정확하게 측량하여 그 시작을 알리는 단어이다.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의 생활을 한껏 옥죄는 그 단어가 조금은 버겁다. 원래의 시간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모든 것이 측량되고 수치화되면서 인간이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하루 일과의 시작을 매섭게 알리는 출근이라는 단어는 한 마리의 사나운 사냥개 같다.


인도 라다크는 비교적 최근까지 그랬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이를 ‘프로로써의 삶’, 즉 사회생활의 필수 아이템이고 책임감의 산물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조금은 긴장된 자세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그 틀을 지키는 것이 하나의 규칙이라는 것이다. 이 의견을 마냥 꼰대적 규정이라고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단순하게 일찍 나오는 조기기상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름의 직간접적인 직장생활 이후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단순한 성실함이나 조직생활에 대한 일종의 '보여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와 함께 하나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라고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본연의 자아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회사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견지하며,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회사의 주된 관심사는 하나의 직원이 가지고 있는 인건비라는 고정비보다 그 혹은 그녀가 더 많은 인적생산성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상명하복식 내리 갈굼 문화를 택하며, 보수적인 시스템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해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관리의 시발점엔 출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근을 한다.


열이 나고 배가 아파도, 숙취가 머리를 박살 내도,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도 꾹 참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씨부리면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부모님께 징징거린다고 팀장에게 전화해서 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교의 수업처럼 한 번쯤 일탈 삼아 결석할 수도 없다. 회사와 우리는 인간적인 사정을 봐줄 수 있는 따스한 관계가 아니며, 돈을 중심으로 한 계약으로 맺어진 자본주의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사정은 약속이나 책임감이라는 근사한 단어들 뒤에 숨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계약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 얽혀 버린 이상, 우리 스스로도 사회가 정의 내린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딱딱함을 강요하는 출근. 이걸 잘 지키는 것을 책임감이라고도, 의지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나 스스로도 시간 약속에 민감한 사람으로서, 자본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출근을 제때 잘하는 것을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 이렇게 하나의 체계만 옳다는 맹목적인 믿음 하에 세상이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지고 있다.


모두가 그러하듯, 벌써부터 퇴근하고 싶다...


사람이 모두 다 다르듯,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황도 다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들 또한 시시각각 다양한 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약속은 지키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인간적인 사정들에게는 조금은 배려해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계약서에 쓰여있는 대로 운영되는 회사라지만, 가끔은 쉴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배려의 폭을 남겨두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장기적으로 회사와 그 구성원들 모두가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어도, 함박눈이 무릎까지 내려도, 혹은 태풍이 한반도를 덮칠 기세라고 해도 우리는 출근을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담담히 사회를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성실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겠지,라고 나도 생각한다.


다만 아주 가끔은, 그러지 않을 수 있기를 꿈꾼다.






커버 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38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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