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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ug 19. 2018

뭔가를 만든다는 것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꼼지락 거리면서 레고 조립에 집중하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모아두신 전단지 뒷면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조금 자라서는 피아노와 플루트, 그리고 수채화와 동양화에 빠져 있었다. 프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학교 대표로 시 대회에 나가서 플루트를 분 적도 있고, 부채에 난을 쳐서 스승의 날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더 자라서는 광고를 짜보는 것과, 앱 기획에 끌렸다. 교내 광고동아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앱 기획 공모전에 나가서 대상도 받았다.


나의 삶은 꾸준히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진로를 정하던 과정에서도 콘텐츠나 IT 서비스를 기획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쪽으로 지원을 했다. 오늘날과 같은 환경에서는 앱이나 서비스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위 IT 업계의 기획자가 되었으나, 내가 생각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나의 명령 수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퇴사의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같은 괴리감도 큰 몫했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품에 안고, 여행을 떠났다. 5주가 지나서 한국에 돌아오자 현실은 나를 차갑게 맞이했다. 그 서늘함에 쫓기듯 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에 대한 결론은 내가 알던 그것이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나만의 것'을 생산하는 크리에이터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내가 무엇을 해왔으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걸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 고민에 대한 결과물이 바로 아래의 세 가지 항목들이다. 최고의 콘텐츠는 아니겠지만, 나만의 최선이며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만드는 것을 가장 높은 수준(?)의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서 자신의 영감으로 악보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구현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한 때는 외고보다는 예고 진학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비교 우위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접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이야기할 세 가지 항목은 내가 혼자서 내가 가진 재능으로 어떻게든 발버둥 쳐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독학으로 혼자서 고민하며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림과_글씨

2016년 11월 말쯤에 처음으로 캘리그라피라고 불리는 세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그림은 지난달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건전한 취미를 찾고, 서예를 하는 선비의 마음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했었다. 그런데 독학으로 계속 끼적이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친구나 주변 지인들에게 하나씩 선물처럼 건네던 것을, 지금은 판매도 하고 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이 정도는 쓰고 그립니다.


그림은 대학교 이후에는 딱히 뭘 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차츰 멀어졌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캘리그라피 엽서를 꾸며보고자 우연히 시도해보니 결과물이 꽤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두 개라도 그려보도록 꾸준히 노력 중이다. 심신안정을 위해 시작했던 캘리그라피가 좋은 취미이자 생산활동이 되었듯, 단순한 엽서 꾸미기로 다시금 시작한 그림도 좋은 결과물을 낳을 것 같다. 큰돈이 되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좋은 습관을 선물해줄 것 같다. 조금 더 주변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것, 뭐 그런 것이라도 말이다.



#글쓰기

2018년 4월 18일, 나는 브런치 팀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예전부터 틈틈이 시도해왔던 브런치 작가 신청이 통과된 것이다. 반수를 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수능도 세 번 봤는데, 브런치까지도 삼고초려해야 했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나름의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큰 설렘은 '글만이' 노출되는 플랫폼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블로그라는 플랫폼은 이미 상업화로 변질된 지 꽤 됐다. 그래서 여기라면 내가 정리한 마음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운이 좋다면 소통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렜던 그 때 기억이 떠오른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브런치 입문(?)에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좋은비님의 <서른의 연애>라는 책이었다. 이별을 포함한 나의 3~4월의 환경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조금 있었다. 그러다가 그 책을 접하고 깊은 공감과 따스한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표지에 자리하던 ‘브런치’라는 플랫폼 이름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직은 무리겠지만, 나도 그런 인간적인 울림이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틈틈이나마 쓰고 있다. 주 3회 업로드라는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말이다.



#영상

2018년 4월부터 고민하다가 7월에 세부 기획과 방향을 정했고, 8월 3일에 최초 업로드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아서 진정으로 재미있게 일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본격적인 실행 전에 고민이 엄청났다. 어쩌다 그 좁디좁은 교집합의 원소를 찾더라도,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보는 맛이 떨어지는 콘텐츠들도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많이 수줍다. 여러모로..


주변에 조언도 구하고, 책도, 인터넷도 찾아보고 고민도 하다가 결국 콘텐츠의 메인/서브 테마를 정했다. 그러고 나서는 곧바로 시작했다. 위에서 말했던 다른 것들처럼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계속해야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초보적인 카메라 앵글과 어리숙한 편집 실력이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믿는다. 폭발적인 반응은 물론이고 미온적인 리액션 조차 없지만, 그래도 1년은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 2회 업로드(화요일, 목요일)를 지키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고 재미있게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 수줍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국내 한 대기업의 최종면접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배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면접관으로 분한 임원들 앞에서 나는 열심히 자기 PR을 빙자한 약을 팔았다. 그러한 말을 들은 연륜 있는 면접관들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합격했다.(안타깝게도 다니던 내가 퇴사한 회사는 그곳이 아니다.) 나는 진짜 그렇게 믿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 걸맞은 인재라는 자신감과 자부심도 있었다. 그래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 말이 담은 이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내가 뱉고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문장 속의 진의에 대해 이제 조금은 알겠다. 내가 이야기했고, 면접관들까지 고개를 끄덕였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모든 직원들이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그렇기에 대체가 쉬운 부품이 되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


모든 회사원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일하더라도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노하우로 탁월함을 인정받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승진이나 고과가 모두 그들의 편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의 인정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부품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예전 회사에서는 그렇게 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새로운 분야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나는 부품이 아니야!"


아무리 소리쳐봐야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부모님과 친구 몇몇 정도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시도해보는 중이다. 글이든, 글씨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이든. 언젠가는 내가 꿈꾸는 목표를 이루길 바라며, 대체 불가능한 크리에이터로 남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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