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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Oct 11. 2020

결혼하는 10년 친구를 축하하며

축사를 준비하며, 사회화에 대한 고민을 하다

10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가 결혼을 했다. 몇 개의 글에서도 언급됐던 '사리기의 달인' K의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주변 사람들이 결혼을 했지만, 이 정도로 친한 친구가 결혼한 것은 처음이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그의 부모나 친척도 아니지만 묘한 감정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와 내가 함께 살아왔던, 같은 세대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끝난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공부를 하고, 놀기도 하고, 고민을 나누던 친구가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그러면서도 묘한 기분이 틈틈이 떠올랐던 까닭은, 앞으로는 예전 같은 사이로 편하게 자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쉬움(?)에 기인한 것 같다. K는 결혼 후에 새롭게 부여받는 남편, 사위 등의 이름을 그 누구보다도 120% 충실하게 열심히, 그리고 무엇보다 '잘' 수행할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결혼을 바라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복잡한 마음의 색깔은 화려한 축하이기에, 그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했던 축사를 적어보고자 한다. 일 때문에 정신없던 2020년에 처음으로 끝까지 완성 지은, 그리고 가장 꼼꼼하게 썼던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쓰다가 말아서 보관함에만 있는 것도 많은데..)




안녕하세요,

신랑 K와 대학교 동기이자 10년 차 친구인 글쓴이입니다.

결혼을 축하하며 그간 제가 봐온 신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제가 지켜본 K는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본인의 주관은 나무의 뿌리처럼 굳건하지만, 가지와 잎사귀는 바람에 내어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선 늘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렇게 둥글둥글하면서도 단단한 성격이 가지고 있는 이면이, 저는 걱정됩니다. 늘 선한 얼굴로 품고 견디는 일들은 우리의 짐작을 뛰어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K가 평소 멀리하던 술의 힘을 빌려 고민을 토로할 때가 떠오릅니다. 사회생활, 인간관계, 진로 등 종류는 다양했지만, 대개 제가 생각지 못한 고민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같이 웃고 떠들기만 했을 뿐, 정작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신부를 만나고, 그 인연의 시간이 짙어지면서 그러한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미담을 전해서 듣기만 하다가 저도 신부를 만나보니 왜 그런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는 K가 가지지 못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이를 인정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K는 참 잘 됐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둘을 축하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이 연기되어 받게 된, 하나의 결혼 두 번째 청첩장


청첩장에도 쓰여 있듯, 두 사람은 일곱 번의 여름을 함께 해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다사다난했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박진감 넘치는 현실을 함께 마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두 사람을 축복하는 입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함께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걸어가는 길이 어떤 길이든 관계없이, 둘이 함께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꽃길로 만들 것이라는 것 또한 저는 믿고 있기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무 같은 K는 신부의 그늘과 버팀목이 되어주고, 신부는 K의 정원사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일생을 지켜주길 바랍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의 울림처럼, 두 사람이 함께 지켜나갈 결혼의 의미가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 번 미뤄야 했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만인의 축하 속에 한 쌍의 부부로 거듭난 K의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하고 싶다. 예전같이 자주는 힘들겠지만, 새로운 적정선 하에 가끔씩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더하고 싶다. 친구들이 결혼하며 새로운 느낌의 거리가 생기는 일련의 과정들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점차 적응해 나가려고 한다. 소소하긴 하지만, 30대라는 나이대에 맞게 나 역시도 점차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왔을 때 느꼈던 새로운 친구관계의 모습, 처음 직장생활을 했을 때 느꼈던 사회생활의 양태들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결국은 적응했다. 그러하듯 나는 지금의 미묘한 아쉬움도 앞으로는 점점 덜어가는 모습으로 사회화하리라 믿는다. 별 것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나이로는 동생이지만, 친구이며 동기였고, 가끔씩은 형 같기도 했던 K가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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