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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의 일상
by 츤데레 Jun 12. 2018

라라랜드

낭만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삶

낭만이라던지, 꿈을 말하면 세상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가 하루 살기 힘든 사회에서 한가로이 그런 생각이나 하냐는 쿠사리를 먹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도 철부지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더니, 사회에 나오면 그런 걸 생각하면 철없는 놈 취급한다. 조심스럽고 진솔한 술자리에서 그런 소재가 언급되더라도, '내가 네 나이 때도 그랬는데 말이야, 그런 건 인마...'로 시작되는 꼰대 토크의 시발점이 되고 말아 버린다. 그게 내가 29년째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사회의 단상이다.


그런 사회의 흐름 속에서 큰 반항 없이 28년 정도 살아왔다. 물론 모범생 같은 생활은 하지 않았다. 나름 사회가 강요하는 일에 대해서 태업도 해보고, 약간 개기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패러다임 쉬프트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모 교수의 가르침대로 적당히 대세에 발을 담갔다. 그래서인지 적당한 성적으로 적당한 학교를 나와 적당한(?)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퇴사했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지만.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빛나는 도시 LA에서 자신들만의 로망을 좇는 자들로, 배우를 꿈꾸는 미아(엠마 스톤 분)와 본인만의 재즈를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이 바로 그 둘이다. 그 둘은 어떻게 보면 똑 닮은 한 쌍이다. 현실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본인의 낭만을 잃지 않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꿈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둘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연주 일을 하면서 소심하게 반항을 하는 세바스찬이 재즈에 대해서는 열과 성을 다해 웅변하는 모습, 힘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디션을 찾아다니는 미아의 모습은 미국판 20대 중반 대학생을 보는 듯하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어서가 아니라, 저 둘은 영화 속에서 반짝반짝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순간에서 그 둘은 다르다. 세바스찬은 조금 더 반항적이고, 미아는 조금 더 타협적이라는 사실이다. 오리지널 재즈의 부활을 꿈꾸는 세바스찬은 본인의 지향점이 분명하여, 이에 위배되는 행동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한다. 생계유지를 위한 아르바이트에도 비협조적이며, 음악적인 견해가 다른 친구와의 협주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아는 본인의 예술 세계보다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기득권의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을 한다. 물론 둘이 데이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서로의 영향으로 비슷한 길을 걸어가려고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두 사람의 천성에 반하기 때문인지, 오래가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세바스찬이 말했듯이.


세바스찬과의 갈등, 그리고 연이은 커리어 측면의 실패에 지친 미아가 꿈을 포기하려고 할 무렵에도 세바스찬은 지치지 않는다. 외적 요인들이 그를 힘들게 할 지라도 그는 꿈을 방해하는 시련에도 반항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재즈라는 본인의 꿈과 함께, 사랑하는 여자의 꿈 또한 본인의 것인 양 챙겨주고 보듬어 준다. 그러한 의지적 반항심 덕에 미아는 성공할 수 있게 되고, 세바스찬 역시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새드 엔딩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 때 불같은 사랑을 하던 사람들이 헤어진 채 만나게 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방이 새로운 사람과 만나 손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 그럴 것이다. 미아와 세바스찬도 그랬다. 5년 뒤 그들은 행복한 성공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있지는 않았다.



이 영화의 대본을 쓰던 사람들은 고민이 참 많았을 것 같다. 막연하게 '세바스찬과 함께 꿈을 찾은 미아가 그와 함께 여생을 보낸다', 라는 결말을 썼다면 달달하지만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비판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 결말처럼의 결말이라면 약간 의도된 슬픔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낭만적이라는 비판을 하면서도 마음 편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대부분 저런 씁쓸함을 많이 함유한다. 이 영화가 이미 충분히 동화처럼 반짝거리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결말에 있어서 조금은 현실의 비중을 조금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꿈이나 낭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품던지 품지 말던지,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100%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는 '공부 vs. 꿈'이, 회사 생활에서는 '안정 vs. 꿈'이 주로 대치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제3의 길을 말한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이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하고 나서 이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내 인생에 거대한 멘토 인양 근본적인 이유를 캐물어보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은 소년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답을 나에게 바랐을 것 같다. 만화 속에서 루피는 해적왕이 되고 싶다는 단순 명료한 꿈을 가지고 그랜드라인을 헤쳐나간다. 그렇듯 나 역시도 ㅇㅇ라는 꿈을 위해서 인생이라는 고난과 파도를.. 로 시작하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되새길수록 와닿는다.


나의 퇴사 이유는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다. 꿈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방향을 재정립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존경하는 신영복 교수님께서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납니다.'라는 글을 적어주셨다. 그때는 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물처럼 살면 흘러 흘러 잘 되겠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기 마련이지만, 방향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바다로는 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회사 다니면서 자주 했다.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사회는 정규 커리큘럼이 없는 곳이라 지금까지처럼 멍 때리고 있다가는 길을 잃는다. 무의식 중에 대리, 과장이 되어봐야 '아 좀 더 어릴 때 다시 생각해볼걸..' 하며 후회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세바스찬과 같은 정도의 극적인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늦기 전에 꿈에 대해서, 그 지향점이 지닌 방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꿈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그걸 인정하고 그냥 받아들여 보고 싶었다. 거창한 깨달음을 얻고 대성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조금이나마 스스로에 대해 덜 후회하기 위해서 말이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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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해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낙관적 염세주의자'이자 '긍정왕'. 글과 글씨로 차가운 반성과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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