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츤데레 Apr 19. 2018

1. 엄마 혹은 어머니

당연함에 매몰되었던 진실함

고민 많이 했지만, 가장 먼저 되새기고 싶은 인연은 바로 어머니이다. 29년 여의 세월 동안 내 옆을 지켜준 가장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소중하지만 그만큼 대접을 해주지 못한 인연이고, 받은 만큼 주지 못한 사람이기에 가장 서럽다.


이제야 알았다. 너무 늦지만 않았기를.


어머니라는 단어

각자 생각나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난 그 단어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리움보다는 죄책감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난 그만큼 제대로 된 자식 노릇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부여잡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모자지간이 그렇겠지만, 우리에겐 특히 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행복한 일도, 그렇지 못한 일도. 함께 해외를 여행할 때는 행복했고, 삶을 포기하고자 했을 때는 불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감정적으로 더 불안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들기도 참 많이 대들었다.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되는 것도 반문했고, 끄덕이면 될 일도 되물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들이라거나 소유물 혹은 아랫 사람으로 대하기 보다는 동등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했다. 부딪히더라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여 풀려고 했다. 가끔 타이르기도 했지만, 존중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난 좀 싸가지 없는 아들놈이었다.


나에게 모든 걸 준 사람이기에 만만했던 걸까. 나에게 잘해준다고 그 사람이 나보다 열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친절한 사랑을 이용하여 하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기에 이를 이용했다. 이용이라는 말이 조금 과격하기는 하지만, 그런 표현을 써야 '나'라는 사람이 저지른 잘못들을 꾸짖을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3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했지만, 퇴사를 앞두고 했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A4 용지를 가득 채운 글을 보여 드렸다. 한 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잃은 것들, 다른 한 장은 퇴사 후에 할 일들. 즉 한 장은 퇴사에 대한 사유서였고, 다른 한 장은 앞으로의 계획서였다. 이걸 본 어머니는 눈물 맺힐 듯한 공감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정신력이 강하신 분이기에 딱히 감정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네가 행복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분노로 이글거리기만 했어. 난 그게 좀 무서웠고, 동시에 슬펐다."


차분하게 절제된 말투로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다. 울컥했지만, 나도 참았다. 이러한 대화를 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서로의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다툰 적이 있기에 얻은 교훈이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더 많아지기 전에, 서른이 되기 전에 방향성을 다시 찾아 보려고 해요."


"앞으로 1~2년,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겠지만 아프도록 부서지고 고민해보는 게 좋을 거야. 돈이나 그런거를 쫓지 말고, 네 앞 길을 위한 방황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던 어머니. 내 모든 걸 품어주던 사람의 품이 작아짐을 느끼며 나는 시간의 무서움에 몸서리 친다. 정말이지 잔인하다. 앞으로 함께 했던 시간 만큼은 우리에게 남아 있으면 하는데, 그 또한 과욕일까 생각하면서 다시금 겁이 난다. 지금까지는 한 번만 더 속아달라며, 부탁을 하고 잘못을 빌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좀 더 부서지고 깨지면서, 모난 자식이 둥글고 단단하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함께, 조금 더 웃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 인간관계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