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에 매몰되었던 진실함
고민 많이 했지만, 가장 먼저 되새기고 싶은 인연은 바로 어머니이다. 29년 여의 세월 동안 내 옆을 지켜준 가장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소중하지만 그만큼 대접을 해주지 못한 인연이고, 받은 만큼 주지 못한 사람이기에 가장 서럽다.
어머니라는 단어
각자 생각나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난 그 단어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리움보다는 죄책감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난 그만큼 제대로 된 자식 노릇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부여잡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모자지간이 그렇겠지만, 우리에겐 특히 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행복한 일도, 그렇지 못한 일도. 함께 해외를 여행할 때는 행복했고, 삶을 포기하고자 했을 때는 불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감정적으로 더 불안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들기도 참 많이 대들었다.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되는 것도 반문했고, 끄덕이면 될 일도 되물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들이라거나 소유물 혹은 아랫 사람으로 대하기 보다는 동등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했다. 부딪히더라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여 풀려고 했다. 가끔 타이르기도 했지만, 존중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난 좀 싸가지 없는 아들놈이었다.
나에게 모든 걸 준 사람이기에 만만했던 걸까. 나에게 잘해준다고 그 사람이 나보다 열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친절한 사랑을 이용하여 하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기에 이를 이용했다. 이용이라는 말이 조금 과격하기는 하지만, 그런 표현을 써야 '나'라는 사람이 저지른 잘못들을 꾸짖을 수 있을 것 같다.
거의 3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했지만, 퇴사를 앞두고 했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A4 용지를 가득 채운 글을 보여 드렸다. 한 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잃은 것들, 다른 한 장은 퇴사 후에 할 일들. 즉 한 장은 퇴사에 대한 사유서였고, 다른 한 장은 앞으로의 계획서였다. 이걸 본 어머니는 눈물 맺힐 듯한 공감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정신력이 강하신 분이기에 딱히 감정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네가 행복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분노로 이글거리기만 했어. 난 그게 좀 무서웠고, 동시에 슬펐다."
차분하게 절제된 말투로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다. 울컥했지만, 나도 참았다. 이러한 대화를 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서로의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다툰 적이 있기에 얻은 교훈이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더 많아지기 전에, 서른이 되기 전에 방향성을 다시 찾아 보려고 해요."
"앞으로 1~2년,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겠지만 아프도록 부서지고 고민해보는 게 좋을 거야. 돈이나 그런거를 쫓지 말고, 네 앞 길을 위한 방황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던 어머니. 내 모든 걸 품어주던 사람의 품이 작아짐을 느끼며 나는 시간의 무서움에 몸서리 친다. 정말이지 잔인하다. 앞으로 함께 했던 시간 만큼은 우리에게 남아 있으면 하는데, 그 또한 과욕일까 생각하면서 다시금 겁이 난다. 지금까지는 한 번만 더 속아달라며, 부탁을 하고 잘못을 빌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좀 더 부서지고 깨지면서, 모난 자식이 둥글고 단단하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함께, 조금 더 웃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