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책임진다는 따스한 무거움에 대하여.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나와 같이 살지는 않고 본가에서 부모님과 사는 친구들이다. 인연만 있는 게 아니고 묘연 또한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 나도 그들과 정말이지 우연찮게 만났다. 처음으로 만난 고양이 가비의 이야기부터 해보고자 한다.
첫만남 : 우연을 가장한 묘연
때는 2014년 여름과 가을 사이. 미루고 미루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나는 집을 나섰다. 슬리퍼를 끌고 어기적 어기적,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때, 아무도 없고 경비아저씨 마저 주무시는 듯한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에 휩쌓인 나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두리번거렸다. 그 때 부드러운 울음 소리가 들렸다.
"냐옹, 냥"
치즈색깔 털에 하얀 양말을 신은 고양이였다. 처음 보는데도 날 따라다니면서 꼬리로 내 다리를 감았다. 고양이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그게 싫다는 표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를 스다듬으려 했다. 고양이는 경계심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그 고양이는 그러지 않았다. 사랑받을 권리를 당당하게 즐기면서도, 내 손길에 따라 뒹글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쓰레기를 버리다 말고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그렇게 처음 가비를 만났다.
그 이후로 계속 보았다. 내가 운동을 갈 때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면 자동차 밑에 가비가 있었다. 슈퍼를 갈 때도 따라 왔다. 몇 주 동안 나의 외출은 가비였다.
당시 우리 집에서는 함께 살 만한 강아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펫샵이나 동물병원 보다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분양 받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가비를 만났고, 나의 설득에 어머니는 내려와 가비를 보기에 이른다.
"엄마가 어릴 때 키우던 꼬물거리는 고양이 같다. 애가 너무 착해."
구조 : 혹은 납치 혹은 입양
그리고는 가비를 데려 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2014년의 추석은 9월 초 였다. 추석이 다가와 아파트 단지에 차가 많아지기 전에, 그래서 가비의 생활 환경이 위험해지기 전에 구조(?)를 하기로 했다. 그 쯤에 만난 동네 캣맘 누나와 함께 말이다.
8월 29일이 되었고, 나는 큰 박스와 담요를 가지고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길 고양이는 집 고양이가 되었고, 을에서 갑이 되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가비는 3살 정도의 고양이로 자잘한 질병들이 많았다. 두어달 정도를 통원하며 가비를 치료했고, 그도 천천히 우리의 사랑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인연 : 가비 덕에 만난 고마움
가비 덕분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첫 번째로는 동네 이웃이자 근처 길냥이들을 책임지는 캣맘 누나를 만난 것이다. 그 분은 처음 만날 때 부터 나와 가비를 챙겨주었다. 가비와 친해지는 과정, 구조하는 과정,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너무도 감사한 인연이다.
친한 형도 생겼다. 처음으로 가비가 동물병원에 갔던 시절에 가비를 치료해줬던 수의사 선생님이다. 다른 원장님들과는 다르게, 따스하게 상태를 설명해주면서 차분하게 가비를 돌봐주었다. 다른 사람들일 필요한 처치만 했다면, 그는 가비의 상처를 소독해주고 연고도 발라주고 보듬어 주었다. 수시로 상태를 물어봐줬고, 챙겨줬다. 그가 다른 병원에 가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그 뒤로도 연락을 이어갔고, 지금은 형, 동생 하면서 편하게 지낸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야기 통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다. 자라온 환경이나 성장 과정에서의 이슈들, 수능을 여러 번 본 것도 비슷했고, 생각도 나름 비슷하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 가끔 한 잔씩 기울이기도 하면서 더 친해졌다. 물론, 인간적인 호감이 있어서 가능한 사이였겠지만, 가비가 없었으면 우리가 만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들이 더 가까워졌다. 나는 외동 아들이고, 집을 나와서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만큼 우리 가족들은 나름 화목은 하지만, 서로 모여 있는 시간이 적은 편이다. 본가에 세 명이 다 있다고 해도, 다들 각자의 생활 공간에서 각자의 할 것을 하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가비가 집으로 들어오고 많이 바뀌었다. 호기심에, 귀여움에, 궁금함에, 그리고 사랑스러움에 모두가 가비의 주 생활공간인 거실로 모였다. 책을 봐도 거기서 봤고, 신문을 봐도 거기서 봤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가비를 매개(?)로 조금 더 서로를 공유하며 훈훈해졌다.
이들 외에도 가비 덕에 알게 된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이 있다. 바로 다음 글에서 쓸, 둘째 고양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