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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pr 19. 2018

4. 가을이, 너무나도 당당한

아름다움만으로 모든 걸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존재

첫 만남 : 가비로 인한 가을

우리 집에 있는 두 마리의 반려묘 중 막내, 가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을이도 가비 덕에 만난 인연이다. 가비가 한창 통원 치료를 받을 무렵, 동물병원에서 분양을 기다리던 아기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그 칸에 있던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은 펫샵에서 온 고양이도, 구조된 길 고양이도 아니었다. 동물병원 사무장님의 반려묘가 낳은 아기들이었고, 가정에서 어미 고양이의 사랑을 받던 아기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파란 눈이었지만, 이제는 노란 눈의 고양이가 되었다.


그중 여러 고양이들 중에 하얀 털에 파란 눈을 가지고 반짝이던 존재가 있었다. 청순한 듯 수줍음을 타는 강아지 같은 가비와는 다르게, 사납게 울어댔지만 초롱초롱하던 고양이가 있었다.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에 나오는 표현처럼 '오직 예쁜 것 하나로 저토록 당당하게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가을이는 그런 존재였고 다른 고민을 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정말이지 당당한 아름다움. (김영하, <랄랄라 하우스> 참조)




가족 : 말썽쟁이 유치원생 같은 고양이

가을이가 '가을이'가 된 까닭은 가을에 태어난 가비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가비의 동생이니 '가'로 시작하는 돌림자를 썼고, 갑으로 살라는 가비보다 어리니 '을'을 더했다. 나름 재미있는 네이밍이지만 더 신기한 점은, 가을이의 생일이 나와 같다는 것이다.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아기 고양이는 1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어미 고양이와 지내는 것이 좋다고들 했다. 모유 수유와 관련한 영양학적인 측면도 그러했고, 정서적으로도 그러하다고 했다. 그래서 10월 중순의 어느 날, 가을이는 우리 집으로 첫 발을 들였다. 600그램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가 새 가족을 만난 것이다.


이제 저 둘은 너무나도 친하다, 거의 흡사 부모자식 혹은 형제처럼


소심하고 조용했던 가비와는 다르게 가을이는 어리고 작아도 완연한 고양이 그 자체였다. 쭈뼛거렸지만 당당했고, 순수해 보여도 야성적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된 생명이 경계심을 표출하며 가비에게 하악질을 할 때는 정말이지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비와는 다르게 너무 말썽을 부렸다. 혹자는 어린 고양이들은 원래 그렇다, 호기심이 많으니... 정도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나도 충분히 아는 바이지만, 정도가 조금 지나쳤다. 



사건과 사고 : 돈 먹는 하마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가을이가 깨 먹은 살림살이만 해도 200만 원어치가 넘는다. 탐스러운 과일이 그려져 있던 포트메리온 접시, 과도한 화려함이 돋보이던 로열 알버트, 거실을 따스하게 밝히던 할로겐 전등 등.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처음에는 말썽을 너무 심하게 부려서, 그리고 나중에는 사건/사고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 가족들을 힘들게 해서 약간 지칠 때도 있었다. 


이렇게 말썽만 부리던 시절을 지나, 그는 천사같은 존재가 되어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몇 달을 그러던 아이가, 나를 지치게 하던 아이가 완전한 가족이 되었음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무엇이 부서지건 무엇이 망가지건 간에 가장 걱정이 되는 게 가을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항상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였다. 너무도 작지만 과분한 아름다움을 품은 그 존재가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기만 바라고 바랬다. 수고스러움 마저 행복이 되었을 때, 그렇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원래도 마음속에 있었지만, 정중앙 한가운데로 말이다.




지금 두 고양이에 대한 글을 마치는 2018년 4월, 가비는 약 7세(추정) 가을이는 4세가 되었다. 고양이 평균 수명이 15세 안팎이라고 하니, 가비는 어느덧 장년층이 되고 가을이는 청년층이 된 것이다. 요즘엔 둘 다 서로가 익숙해지고 나름의 세월의 짬도 생겨서 다소 의젓한 집 고양이이자 개냥이가 되어 잘 살고 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던데, 고양이 팔자는 그 이상인 듯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그들과의 삶이 익숙해질수록 동시에 걱정도 커진다.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걱정하는 바이지만, 나한테는 더 심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나는 행복한 그 순간에서조차 행복이 언젠가 끝날지도 모르기에 불안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내가 이룬 것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 덕분에, 그리고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기쁠 때에도 나는 항상 '행복이라는 그래프'의 기울기가 음수로 바뀌는 지점이 두려웠다. 그래서 겉으로는 웃었지만 항상 불안에 떨었다. 그래서 도망치기도 많이 했다. 


앞으로라도 그러지 않으려 한다. 가비와 가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더 잘해주고 챙겨주고 보듬어주고 싶다. 떨어져 살기에 매일 그러지는 못하지만, 가끔 만날 때라도 그들이 원하는 바를 신경써주고 싶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금 진행 중인 행복한 현재에 집중하는 게 현명한 것임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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