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씨 Aug 27. 2024

소방차 두 번이나 출동한 사건 2

이쯤 되면 블랙리스트


나는 이 두 번의 어처구니없는 출동 사건으로 인해 그 해 그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농담이긴 하지만 재밌어서 그렇게 떠벌리며 산다.


그 해 그 일이란, 소방차가 연거푸 두 번 출동한 사건 몇 달 후였다.

소방서가 이 주택단지 옆으로 “아예” 건물을 새로 지어 입주한 것이다.

나를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ㅎㅎㅎㅎ. 아니면 너를 지켜보겠다 이건가.




두 번째 해프닝은 이랬다.


첫 번째 출동이 있은 후 2주 정도 지난 후였다.

내일이면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라 집안 대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침구와 화장실을 특급호텔보다 쾌적하게 유지하는 게 인생 목표인 양 살 때였다ㅋ.

그때 우리 집에 강아지가 두 녀석 있어 반강제로 하루에 세 번씩 청소기를 돌릴 때였으니 굳이 대청소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집 떠나 있다 오는 가족이 있을 때면 환영을 표현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거였다.


청소 막바지가 되었다. 현관을 청소하며 숨어있는 먼지를 “박멸”하는 중이었다. (이때 나의 준 결벽증이 새로 이사한 집에 대한 애정과 함께 피크를 찍고 있었다.) 알람 시스템 컨트롤 박스가 현관 맞은편에 있는데 문을 여닫는 곳이라 먼지가 잘 앉았다.

버튼 사이를 닦으려면 면봉을 가지러 이층까지 가야 하는데 가기는 귀찮았다.

그냥 해보자. 손이 작아서 가능해… 손이 작은 건 사실인데 가능치 않았다. 내가 5년만 젊었어도 더 세심할 수 있었다고 속으로 불평을 늘어놨다.

그런데 아이고 맙소사.  


눌려 버린 버튼이 다름 아닌 화재경보였다. 즉각 알람시스템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까지도 실수라고 하면 끝날 줄 알았다.

신원을 확인하는 비번을 대답하고 당황해서 말이 길게 나왔다. 괜찮아요 실수예요 별일 없어요를 떠들어댔다.

이미 소방서에 알렸단다. 제발 다시 연락해서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10초 후 다시 통화가 이루어졌다. 이미 소방차가 출동했단다.

하아…. 지난번 일이 생생한데 또…


경험이 이렇게 무섭다. 하나도 긴장이 안 됐다.

마침 옆에서 알짱거리던 큰 강아지를 보자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강아지와 사람의 조합은 좋은 인간의 필수덕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첩하게 목줄을 채웠다. 산책도 시킬 겸 강아지를 데리고 현관문을 나섰다.

이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막을 심산이다. 단지로 들어서는 입구까지 100미터 안팎이다.

소방차 한대가 사이렌 없이 주택단지로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왜 반갑지?


마주 오는 소방차로 다가가며 강아지 목줄을 안 잡은 팔을 최대한 높고 넓게 휘저어 소방차를 세웠다.

정황을 보니 실수투성이 진상이었다는 연락을 이미 받은 것 같았다.

소방관이 소방차에 앉은 채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내려다봤다. 웃음끼 일도 없다.


“내가 그 집 멍청이야. 실수였어. 진상 같겠지만 내 말을 믿어야 할걸?” 창피하고 미안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미국에선 그럴 때도 당당해야 한다. 미안할 때 짓는 멋쩍은 미소를 짓거나 해선 안된다.

오는 길에 연락은 받았단다. 그래도 확인하는 건 규정이란다.

“그래 알아. 엄청 창피하지만 우리 집 저기야. 알고 있을걸?(지난번에 온 소방관일 수도 있으니까ㅋ) 연기 나는 거 없지?”

의미 없다… 딱 그 표정으로 내 행색과 집 쪽을 훑더니 동료와 몇 마디 주고받고는 오케이 좋은 하루! 하며 차를 돌렸다. 후우…  


미국이 장점도 많고 단점은 더 많지만 장점 중 최고는 상대를 비난하는 말투가 없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주의하라거나 최소 투덜거림으로 민망하게 만들고 떠났을게 뻔하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혼내는 말투는 많이 준 것 같긴 하다.


갑자기 등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긴장 안 한 줄 알았는데 식은땀이 났던가보다. 바람에 땀이 식고 있었다.

이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순식간에 세금을 얼마나 해 먹은 거야. 미국에서 뭔가를 하나 움직이려면 상상을 넘어서는 비용이 든다.


“소방차를 온몸으로 돌려 세운 여자야.”

남편과 오랜만에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

마치 무용담이라도 쏟아놓듯 아주 신이 났다.

민폐라며?!


그때 소방관들을 되돌린 일등공신은 강아지였을 거다. 강아지 목줄을 잡고 강아지 보폭에 맞춰 한가롭게(그렇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했다ㅋ) 걸어오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굳이 더 확인할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이미 결정했었을 거다.

몇 년 후에는 그 강아지 덕에 미국 공항 세컨드 룸에서 강제 출국을 면했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이 생각이 확고해진다. (ㅋㅋ 맘대로 생각해야 살기 편하다.)


연달아 일어난 두 번째 출동조차 페이크였으니 나는 911 블랙리스트에 떡하니 “등재”되어 있을 것만 같다. ㅎㅎㅎ.

작가의 이전글 소방차 두 번이나 출동한 사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