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씨 Aug 25. 2024

소방차 두 번이나 출동한 사건 1

무료입니다를 이렇게 아름답게 말한다고


이 글은 브런치작가 mu e님의 글이 동기가 되어 썼다. 잊고 있던 일이었는데 생각나게 해 줬다. 이 작가님의 해당글은  <미국 오자 마자 우리 집 경찰 출동?>이다.




십여 년 전 미국에서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집은 구석구석 손 볼 데가 많았다. 옆집 미국 할머니 제니퍼도 늘 집을 손봤다. 그런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고 유튜브에서 배운 솜씨로 내 손으로 타일도 수리하고 벽도 새로 바르는 재미에 빠져있던 때다.

그러다 남편이 장기출장을 갔다. 출장을 가서는 집 걱정을 많이 했다. 낯선 곳에 홀로 있는 나를 걱정하는 건지 내가 집을 망가뜨릴까 봐인지 둘 중에… 둘 다겠지.


제니퍼가 또 공사를 하는지 벽이 울리며 쿵쿵 소음이 건너왔다.

우리 집은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타운홈이다. 뭐 해? 들여다보니 인부까지 불러서 차고(garage) 벽에 잡다구리 짐 보관용 앵글을 세우고 있었다. 큰 못을 여러 개 박느라 벽이 한참을 울렸다.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워낙 냄새에 예민해서 찾아보면 별 것 아닐 때가 많지만 분명 냄새가 났다. 전선이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화학약품 같기도 했다. 진원지를 알 수 없어 며칠을 긴장했다.

냄새가 유난히 많이 나던 날 거실 붙박이 장 뒤에서 냄새가 훅 느껴졌다. 그 벽 너머는 제니퍼네 집이다. 아래엔 차고가 있다.


붙박이장 뒤엔 전선이 없다. 그렇다면 이 냄새는 벽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사 오면서 붙박이장을 해 넣었는데 장을 고정하기 위해 못을 박은 곳으로 냄새가 나오는 것 같았다.

제니퍼네 앵글작업으로 벽이 울리자 벽속에 있던 캐캐한 냄새가 틈을 타고 온 게 분명했다. 이쯤 추리가 가능하면 거의 셜록홈즈급 아닌가 ㅎㅎㅎ.


어깨가 으쓱해지고 미소가 지어졌다. 벽 속이 안정되기만 기다리면 돼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타는 냄새가 난다던 말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집 떠난 남편에게 전화했다. 통화 중이었다.

집 떠나면 모든 게 극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설명은 다 들어야 할거 아닌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데 대뜸 소방서에 연락했단다.

무슨 소리? 언제?

방금.

왜 괜한 짓을 해 취소해를 두 번 외치는데 소방차 싸이렌 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빠. 르. 다.


현관문을 열자 열명도 넘는 소방관들이 떡 버티고 서있었다. 다들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였다. 인물로 소방관을 뽑나. 웰케 다들 잘생긴 건지. 인상들이 하나같이 선하다.


별일 아니니 가셔도 됩니다를 주제로 상황을 설명했다. 바뜨. 내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게 규정이란다.

순간 그들이 신고 있는 장화가 줌인됐다. 검정색 긴 장화엔 어느 화재 현장에서 바로 왔는지 재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손에는 급수파이프와 화재 진압용 도끼를 한 자루씩 들고 있었다. 도대체 남편이 뭐라고 했길래…


공무집행 중인 소방관에게 신발을 벗어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집안에 들어오는 걸 막아 볼 방법을 떠올리자…

잠깐! 다급해서 나도 모르게 양팔이 벌려졌다.

“어떤 카운티에선 소방차 출동 시에 벌금을 청구한다던데? (그렇다면 난 돈 안 낼 거니 포기하지?)”

그때 선하게 웃으며 했던 소방관의 대답이 잊히지가 않는다.

편의를 위해 도시 이름을 고담이라 하겠다.

“This is the beauty of living in Gotham.”

“걱정하지 마”. 또는 “무료야” 가 아닌 저런 매우 문학적인 대답은 어떤 여유를 가지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더 이상 재투성이 장화의 진입을 멈출 방도는 없었다. 손에 도끼를 든 대여섯 명의 소방관이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벅저벅이란 의성어 그대로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장화에서 재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으이구…


확인을 마치고 나와 현관에서 마무리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뜨려는 데도 그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떠날 기미가 없다.

궁금한 건 못 참는 편. 뭔 일이냐고 물었다. 또 열심히 설명해 준다ㅋ.

두 카운티에서 소방차가 각각 두대씩 왔고 오랜만에 만난 이 소방관들은 반갑다고 서로 소식을 묻는 중이었다.

소방차를 보도블록 왼쪽과 오른쪽에 나누어 세우고 가운데쯤인 우리 집으로 왔기 때문에 헤어지기 전 회포를 나누는 중인 거다.


소동 후 긴장이 풀리자 남은 건 마루 바닥과 카펫에 선명한 발자국과 흩뿌려진 재 그리고 그들이 화재현장에서 데려온 냄새까지 더해져 더 진해진 타는 냄새.

그런데 소방관들은 냄새는 안 난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들도 냄새를 맡았다면 들고 온 도끼로 붙박이장을 깨부수고 확인했을지 모른다.


남편에게 부아가 났지만 화를 내는 대신 청소로 힘을 뺐다.



첫 번째 소방차 출동 사건은 어이없기도 하고 처음 겪는 일이라 한편 재밌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출동 사건은 더 어이없다.


작가의 이전글 재활 닥터 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