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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Sep 04. 2024

하늘로 가는 계단이 있는 길

북한산 둘레길 3구간 흰구름길 재도전


평소 주말엔 되도록 집에 머문다. 주중에 힘껏 일하고 주말에 밖으로 나오는 젊은이들에게 은퇴한 시니어가 세상을 양보하는 나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등산객이 많기를 바라며 일부러 주말을 택했다. 등산객을 따라가기만 해도 길 잃을 염려는 없지 않을까 해서다. 오늘은 혼자 길을 나섰다.


3구간에 다시 들어섰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4구간에서 2구간을 향해 역방향으로 걸을 예정이다. 왜 길을 헤맸는지 알고 싶었다.


3구간의 난이도가 중간이라는데 계단이 많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엔 숲을 헤매느라 계단이 기억에 크게 없다. 유추하건대 길이 헷갈릴 땐 흙길을 피해 “돈”들인 길을 택하면 될 것 같다. 길이 아닌 곳에 예산을 쓰진 않았을 테니.


새벽에 장대비가 지나간 아침. 장마의 한가운데다. 구름이 잔뜩 낀 대기가 무겁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숲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길 30여분. 지난번에 그리도 찾아지지 않던 구름전망대가 산길에서 흔한 들꽃을 만나듯 쉽게 나타났다. 허무하리만치 그냥 가는 길에 있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3층 전망대에 섰다. 눈을 든 순간 심장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이 풍경 어찌한단 말인가. 북한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들이 비구름에 휩싸여 오묘한 기운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산신령이라도 나올 모습이다. 이런 장관을 혼자 보고 있자니 여러 사람이 생각났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생각나듯.


좋은 카메라 장비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때다. 함께 왔었지만 이걸 보지 못한 딸을 위해 폰이나마 들어 사진을 찍었다.

(구름을 덮은 북한산. 폰카메라가 멋진 풍경의 백분의 일도 못담아 아쉬운 순간. 워낙 광활해서 낮아 보이지만 눈으로 보면 꽤 높았다.)
(출처: 북한산 국립공원 홈피)


다시 울창한 숲을 지나 지난번 중도하차했던 지점 화계사에 도달했다. 길은 찾고말고 할 것도 없이 순조로웠다. 이정표를 보았을 뿐 다른 등산객을 따라 걸은 것도 아니다. 지난번 몇 번이나 길을 헤맨 이유는 더욱 오리무중이 되었다.


사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서툰 눈으로 봐도 화계사는 꽤 큰 고찰이다. 찾아보니 창건 시기가 신라시대라고도 하고 중종 때라는 글도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요즘 템플스테이와 외국포교로 꽤 유명하다는 것. 그런 걸 다 떠나서 북한산이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도가 저절로 될 것 같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밥은 꽤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점심 공양시간은 아직 멀었다.


화계사를 지나 다음 후반의 길을 가기 위해 둘레길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끝없이 가파른 계단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가파르기가 과장법 20% 가미해서 암벽 타는 수준이다. 위를 올려다보니 계단 위로 하늘만 보였다.


벽처럼 느껴지는 계단에 올라섰다. 고맙게도 잠시 후 계단참이 있어 쉴 수 있었는데 그곳은 갈림길이기도 했다. 계단 오른쪽으로 흙길이지만 잘 닦여진 것이 트래픽이 꽤 있어 보임직한 숲길이 있다. 그 길이 더 둘레길스러웠다. 당연하게 그 숲길로 가고 싶었으나 유혹을 막아서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사유지므로 등산객은 계단을 이용하라는 내용이다.

이정표를 따르지 않았다가 길을 또 잃을까 봐 안내대로 계속 계단으로 올라갔다. 한 달 전엔 남산계단도 큰 어려움 없이 올랐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꾸역꾸역 백개쯤 타고 올라가도 아직도 하늘 밖에 보이질 않는다.


젊어서 놀러 가 본 설악산 한라산은 정상 직전에 철제 계단이 있었다. 거기서 본 철제 계단은 궤적과 끝나는 지점을 볼 수 있어 마음의 준비가 가능했었다. 준비한 알량한 마음을 서너 차례 고갈시키고도 해탈지경이 되어서야 끝나긴 했지만.


이 계단은 산비탈에 돌을 쌓아 올려 10미터쯤 다음은 지평선이다. 키가 큰 분들은 그 뒤도 볼 수 있었으려나. 내겐 돌계단을 타고 ‘승천하는’ 느낌이었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게걸음까지 동원해 계단을 오르자니 정말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인지 갈등이 일었다. 잠깐 서서 다른 등산객이 오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젊은 등산객이 익숙한 길인 듯 질문에 답해준다.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3구간이 계단이 좀 많죠?” 하며 응원의 미소를 보내고 떠났다.


무릎도 쉴 겸 좀 오래 망설이다 되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로 돌아가 사유지라는 숲길로 들어갔다. 계단길 조성 전에는 이 길이 둘레길이었을 거란 예상이 맞았다. 사유지일 것 같은 구역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다. 약수터에는 등산객 둘이 물을 푸고 있어 반갑고 정겨웠다. 연세 지긋한 부부가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사유지의 주인인가 하는 추측을 하며 이 길이 맞는가 여쭈었다. 둘레길이 맞지만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며 미소로 답한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은 잘 조성된 맨발 걷기 공원을 경유해 숲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도 당당하게 붙어 있다.(-.-)


길은 훨씬 순해졌지만 이미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급속하게 느낌이 나빠지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3구간 종료 지점까지 고작 800미터 남았다. 완주하고픈 마음을 누른다. 고집은 이럴 때 쓰면 안 된다. 산을 빠져나왔다. 성북구문화원을 지나 가오리역까지 걷는 1.3킬로의 평평한 길이 구름같이 편하다.


두 번째도 깔끔하게 실패한 <북한산 둘레길 3구간 흰구름길> 도전이었다아아…




느지막이 둘레어 초년생이 되어 느낀 애로의 첫째도 둘째도 계단이다. 대부분의 길들이 계단으로 시작해 계단으로 끝나는 것 같다. 그런데 둘레길 계단은 차라리 애교인가 보다. 산악인들의 말에 의하면 정상을 가려면 죽음의 계단은 통과의례라고. 속칭 무릎을 갈아 넣어야 한다나.


3구간의 ’ 하늘로 가는 계단‘은 사유지와의 분쟁에서 급하게 길을 확보하려 고군분투한 공원공단의 수고가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정작 가 보니 사유지란 길은 등산객을 저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러려는 시도도 보이지 않는 평범한 둘레길이었다. 공원 측에서 붙인 안내판만 빼고 말이다.)


미끄러운 바위와 가파른 산길에 계단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인 공원의 기획은 좋았다. 그런데 모든 걸 계단으로 풀어낸 행정은 아쉽다.


옆에 한 뼘쯤 남은 흙길로 계단을 피해 걷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흙길로 놔두면 안 됐을까. 미끄러져 다칠 경우의 수를 줄이려 개인들의 무릎에 책임을 전가한 것만 같은 획일적인 행정은 고마움보다 비겁함이 느껴진다. 계단이 없어 굳이 인간이 접근할 수 없다면 또 그대로 좋지 않을까. 그곳엔 자연이 번성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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