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씨 Aug 31. 2024

미국공항 세컨드 룸에 가 보았니

꼬집어서라도 울려!


내겐 강아지 두 녀석이 있었는데 여행할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애완동물은 비행기를 탈 때 몸무게로 탑승 칸이 갈린다. 우리 큰 강아지 대강은 단단한 캔넬에 들어가 수화물칸으로 가야 하고 작은 강아지 소강은 작은 이동 가방에 넣어 캐빈에 같이 탈 수 있었다.


캐빈에 같이 타는 소강은 걱정할 일이 없지만 수화물칸으로 가는 대강은 물병만 댕글 달린 캔넬 안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패드를 깔아 주어도 깔끔쟁이라 절대 자기 누울 자리에 용변을 보는 일이 없었다. 대기시간과 도착 후 짐 찾는 시간까지 포함 16시간 이상을 참아낸다. 반복되는 같은 여정에 대강이는 로직을 꿰고 있었다. 조용히 기다리다가 수속을 마치고 공항 건물 외부로 나가는 순간 화장실 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부르스를 한다. 그래서 게이트를 나선 후엔 잔디까지 뛰다시피 나가곤 했다.


어느 해였다. 암수술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베프 곁에 있어 주느라 일 년을 훨씬 넘겨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갔다. (다행히 베프는 지금 건강하게 활동적으로 살고 있다.)


인천공항을 떠나 미국 워싱턴 디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입국 심사관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입국심사관들은 자기 성향대로 미소를 짓거나 무표정이거나 다르긴 해도 질문을 많이 한다. 입국자의 대답을 통해 수상한 점을 캐기 위해서다. 이번엔 질문 없이 여권과 화면만 보더니 쪽지를 하나 얹어 여권과 함께 돌려주면서 쪽지에 적힌 장소로 가란다. 쪽지에는 ‘B’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와는 달랐지만 늘 했던 강아지 검역서류 추가 검사인 줄로만 알았다. 검역은 짐을 찾고 게이트로 나가기 전에 이루어진다. 금지된 동물사료를 반입하는지 가방을 일일이 검사할 때가 많다. 검역서류를 꼼꼼히 뜯어보고 질문도 많이 한다. 특히 초보심사관을 만나면 질문이 끝이 없다. 이 방면에 연륜이 쌓인 나는 간혹 서류에 실수로 잘 못 기입된 것이 있어도 호기롭게 무마하고 통과하곤 했다. (서류 작업 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보니 숫자나 철자에 실수가 왕왕 있다.)


‘B’라는 곳을 찾는데 늘 가던 검역 장소가 아니다. 흠 뭐지? 눈치 없이 물어물어 찾아갔다. 세컨드룸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건 그런 곳은 경찰이 대동하고서나 가는 곳인 줄…(하… 그때 그냥 게이트로 슬쩍 나가 버릴 걸 ㅋㅋ)


찾고 보니 외딴 장소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는데 가슴 높이쯤 되는 높다란 데스크가 방을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데스크 뒤편 저 멀리 방 끝 긴 벽 앞에 건장한 출입국 경관이 여러 명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먼저 보였다. 데스크 앞엔 휑한 공간 뒤로 대기실용 의자가 몇 줄 있고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어린애부터 어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딱 봐도 가족이다. 내가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내게 쏠렸다.


소강이 이동가방은 어깨에 메고 짐카트를 밀고 데스크로 다가갔다. 대강이가 있는 켄넬은 카트 위에 얹었는데 카트 아래에는 큰 가방 두 개가 포개져 있었으니 높이가 내 키를 넘어간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기다란 데스크엔 단 한 명의 심사관이 앉아 있었다. What can I do for you? 또는 May I help you? 정도로 반갑게(?) 맞아야 할 것 같은데 나를 쓱 한번 보더니 그대로 자기 하던 일로 시선을 내린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데스크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고개조차 안 든다.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시비쪼로 말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고 물었다.

“여기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그다음이 기가 막혔다. 턱을 까딱해 뭔가를 가리킨다. 거기엔 여권이 일렬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나는 내 여권이 맨 위에 놓이면 먼저 온 순서대로 처리할 자기만의 시스템은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이 됐다.

“내 여권을 여기다 올리라고요?” 묻자

날 다시 할끗 보더니 하고 있던 일인지, 그런 척하는 건지 아래로 눈을 내려 깔며 대꾸도 안 한다. 이건 고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젠 상황이 어떻든 기분이 나쁘다. 그런 와중에도 고지식한 난 진심으로 순서가 뒤바뀌는 건 옳지 않다고 걱정하며 다시 물었다.

“그냥 위에다 놓는 건가요?”

그가 못 들은 척 일어나 뒤편으로 가버린다. 이런 재수탱이… 가 입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등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방 끝에는 허리에 총을 찬 경관 여러 명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권을 올려놓고 뻘쭘해져서 뒤를 돌아보았다. 남미 어디쯤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젖은 빨래 같은 모습으로 초췌하게 앉아 있었다. 그제야 이 장소가 밀입국자를 다루는 일명 세컨드룸의 일종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무시당하고 대책 없이 앉아 있으면 저런 자세와 표정이 되는 걸까. 적어도 저곳에서 몇 시간째 벌을 서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어린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 있다.


비로소 내가 그 잘난 미국을 너무 오래 떠나 있었음이 떠올랐다. 매번 비자를 갱신하기 귀찮아 별생각 없이 만든 영주권. 미국과 한국에 흩어져 있는 가족을 살피러 자주 오가느라 굳이 재입국 규정에 신경을 써보질 않았다. 사실 그 규정도 조금 모호하다. 육 개월이지만 일 년 안에... 나중에 알아보니 일 년을 넘길 예정이면 미리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허가서를 지참해서  출국해야 했다. 시민권이 목적이면 육 개월 내 재입국을 지키는 게 유리하단다. 난 방문체류 편의상 소지하다 보니 관심 밖이었다. 처음에는 규정을 읽었겠지만 신경도 안 쓰고 있었을뿐더러… 나이 들어봐요. 새로운 기억이 저장되면서 옛 기억은 포맷되곤 해요ㅋ…


흠. 난 모른다. 몰랐다. 그게 심사관에게 대답할 나의 솔직한 변명이다. 그 외는 아무런 생각을 안 했다. 아무리 ‘죄인’이어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다에 방점이 찍혀 화가 나 있었고 길어지는 대기에 대강이의 방광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대강이가 작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필요하단 신호다. 조금만 기다려. 말을 건네주면 잠깐 그쳤다가 다시 신음을 뱉는다. 켄넬 안으로 손가락을 비집어 넣어 대강이를 토닥이며 눈은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기회를 보고 있었다.


데스크 심사관이 사라진 후 두 명의 경관만 빼고 모두 우르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한 시간이 지났다. 20분쯤 지나 그들이 손에 커피잔을 하나씩 들고 나타난 걸 보아 점심을 먹고 돌아온 모양새다. 데스크 심사관도 들어오는 게 보였다.


심사관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에게 바싹 다가섰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느라 낮지만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 (적반하장 ㅋ)

“당신 이 개 보이지? 이 개는 대기시간까지 포함해 무려 16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왔어. 당장 소변을 보게 해줘야 한단 말이지. 이 개가 소변이 급해서 계속 울고 있고 난 계속 기다리라고만 말하는 중이야! “

그 순간이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엑!!!”

내 말이 끝나는 박자에 딱 맞춰 대강이가 그 큰 방이 울리고도 넘치게 비명을 내질렀다. 이렇게 절묘하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강아지 파워(?)를 업고 의기양양(ㅋ)해졌고 심사관의 동공은 흔들렸다. 그가 경관 쪽을 돌아보았다. 경관들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둘이 잠시 소곤대더니 경관이 내 여권을 집어 들고 내게 와서 물었다.

“왜 여기 왔는지 아남? “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름. “ ㅋㅋㅋㅋㅋㅋ

경관이 내 여권을 집어 들었을 때 난 알았다. 훈방조치할 거란 걸. 경관이 내가 이미 예상한 걸 말해준다. 뭔 되고 뭔 안되고 블라블라블라…

들리겠니? 대강이가 난리부루스를 치며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짖는 게 아니고 멱따는 소리ㅠ)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영주권을 회수하고 강제출국시킨다고 으름장을 놓고 여권을 돌려주었다.

대강이가 급하지만 않았어도 데스크 심사관에게 무례에 대해 따질 뻔했으나… 여권을 받아 들고 번개같이 뛰었다. 뒤에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희망이 되길 빌었다. 꼬집어서라도 애를 울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 한동안 민망하게 서 있었다. 급한 나머지 잔디까지 못 가고 출입문 바로 옆 작은 화단에 대강이를 내려줬다. 수컷이라 다리 한쪽을 들고 폭포 같은 쉬야를 하는데 족히 5분을 한 자세로… 50분 같은 5분간 수많은 사람이 한 번씩 쳐다보며 곁을 지나갔다. 근처에 서 있던 수컷 사람이 놀랍다는 표정을 보냈다.ㅋ







작가의 이전글 정말 삼각산 산신령을 만났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