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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Oct 03. 2024

괴테는 ‘괴테’가 아니었다.

프랑크푸르트 괴테하우스(괴테 생가)


무려 30년 전 일이니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1990년대 초였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참가하느라 출장 간 독일.

박람회 기간 내내 오지게 일하고 하루 자유시간을 얻은 귀국 전 날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부슬부슬… 스산함 그 자체.

그런데 우산은 딱히 없어도 되는 게 신기했다.

팀원이 8명이었나…

그중 여자는 두 명이었는데 우리는 (맥주와 유흥에 관심 있어 보이는) 남자팀원들과 헤어져 따로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 하면 <괴테하우스>지.

(당연히 종이) 지도를 보면 분명 지척이건만 30분째 골목에서 헤매는 중이었다.

큰길로 나와 몇몇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독일에서 영어 쓰는 외국인이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종종 뉴스에 나던 때였긴 해도 영어를 쓰면서 별로 걱정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많은 독일인들은 영어가 유창하다. )

길을 물어본 행인 중 한 명은 영어 쓴다고 일부러 무시한 것 같기도 했고

한 명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고 아니면 그냥 바빴을 수도 있고,

나머지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지나쳐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괴테라면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니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인물인데 가차 없이 모른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광화문에서 외국인이 이순신 장군을 어눌하게 발음했다 치자. 그래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찾는다는 것쯤은 알지 않을까?

아… 답답… (나중에 독일에 살면서 느꼈던 답답했던 심정은 다른 때에 풀어 보련다. 괴테 같은 대문호의 탄생과 그들의 꽉 막힘은 아무래도 매칭이 안된다.ㅋ)


포기해야 하나 할 때 20대 청년을 만났다. 한 번 더 물어본다.

“괴테하우스를 찾는 중입니다. “

” 무엇을 찾는다고요? “ 다행히 영어가 유창했다.

찾는 게 뭔지 다시 말해 주었다. 그런데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제야 ‘괴테’의 발음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독일어는 그때도 지금도 Nein(나인. No) 밖에는 모르는 나.

아차 싶어 이리저리 모음을 ‘꼬아’ 발음을 해보았다. 자고로 웬만한 발음의 차이는 모음에서 비롯된다.

그러자 그 청년,

“아! ㄱㅗ!” 이런다.

독일의 괴테는 ‘괴테’가 아니었다.


독문학 하셨거나 독일어 하시는 분 제발 웃지 마세요. 그때 들었던 그 청년이 해 준 발음을 우리 자음 모음을 이용해 표현해 보려 애쓴 거예요. 그때 충격이 컸어서 30년이 지났어도 안 잊혀요. ㅋㅋㅋ

다행히 이리저리 꼬아 본 발음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시간을 내어 길을 알려 준 청년의 도움으로 괴테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괴테하우스는 지나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한적한 골목 중간에 있었다. 회색빛 도는 흰 담벼락이 계속 이어지는 골목이었다.

괴테하우스라 쓴 짙은 색의 작고 담백한 현판이 머리보다 조금 높게 가로로 붙어 있었고 입구는 나무 대문이었다.

규모도 대단히 크거나 하지 않았다. 괴테가 살던 삼 층집(? 몇 층이었는지도 까먹었다.)과 추측컨대 옆 집을 한채 더 구입해서 확장했는지 두 가옥 사이에 드나드는 문을 낸 담이 있는 구조였다.

영어 안내 같은 건 아예 없어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유리덮개로 가려진 대문호의 자필 원본들을 넋 놓고 한참을 보았다. 분명 독어여서 대부분 알아볼 수 없음이 뻔한데 읽히는 느낌이 들어 지루하질 않았다.




15년 전 괴테하우스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다.

오래전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물었던 큰길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번화가가 되어 있었다. 30년 전과는 다르게 길 안내판도 잘 되어 있었는데 따라가 보니 현대식 괴테박물관 입구였다.

기억을 더듬어 나무대문과 현판이 있던 골목길을 찾아갔다. 현판도 나무대문도 그대로 있었지만 출입은 폐쇄되었다.

대신 건물 반대편 아까 보았던 현대식 입구와 기념품샵을 통해 출입하게 변했다.

*혹시 그때도 정면 박물관은 있었는데 후면 하우스만 본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진실은 모르겠다.


나무대문 옆 현판 아래에서 찍은 옛 사진은 어디에 박혔는지 알 길이 없고,

혹시 인터넷에 떠다니는 사진이라도 구할 수 있을까 뒤져 보았으나, 골목길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프랑크푸르트에 가는 분 계시면

괴테하우스 골목길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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