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르크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료와 둘이 괴테 하우스를 갔던 날이었다.
오후엔 하이델베르그 기차 여행으로 짧았던 독일 방문을 기념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괴테하우스를 찾느라 길을 헤맸고 안에서도 시간을 꽤 써버려 이미 오후 중간이 되어 버렸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다른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먼 발치에서 성을 보고 바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 할 시간 밖엔 없었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아 가보기로 했다.
전차 운행지도를 보고 역이름을 확인해 자동승차권판매기에서 승차권을 구매했다. 기계로 승차권을 사는 건 처음이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전철도 역무원에게서 승차권을 사던 시절이었어서 진땀을 흘리며 겨우 해냈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는 노선이었다.
독일어로만 된 표지판들 속에서 뭐든지 약간은 불확실한 듯한 스릴. 차창에 기대어 서서 끝도 없이 펼쳐진 촉촉한 초록 들판을 보고 있으니 그런 불확실함조차 낭만적이었다.
갈아타야 하는 역에서 내려 다음 기차에 올랐다. 기억은 아주 희미하지만 목적지까지 정거장 수가 열개 내외였던 것 같다. 그러나 갈아타고 두 번째 정거장이었던 건 분명하게 기억한다. 여기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차가 역내로 진입하는데 체격이 다부진 한 무리의 여인들이 반듯하게 횡렬 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차문이 닿는 위치에 맞추어 서있는 모습이었다.
기차가 서서히 그녀들 앞에 정차했다. 문이 열리자 그녀들이 하차하려는 승객을 저지하며 재빠르게 올라왔다. 그리고는 모든 문을 등지고 막아선 채 그중 한 여인이 안내말을 날렸다. 독일어를 몰라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아 승차권 검사임이 분명했다.
순간, 잠깐 술렁임이 일었고 기차 중간에 있던 여자 승객 하나가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봤음직한 광경.
가까이 있던 단속원이 달아나는 승객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힘으로 눌러 바닥에 고정시켰다.
무임승차를 단속하는 방법이…
강도를 잡는 것도 아닌데…
프랑크푸루트의 운임시스템은 패스를 구입해 보관하고 있다가 단속이 있을 때만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단속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성 무리는 바로 단속반이었다.
“우리 표 제대로 샀겠죠?”
불안감에 동료에게 괜한 질문을 해본다.
우리 차례가 되어 표을 내밀었다.
나쁜 예감은 어찌 이리 잘 맞는 것인지...
표를 들여다보며 월척이라도 낚은 듯한 표정이 되는 단속원의 얼굴.
가슴이 쿵! 내려앉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가 벌금딱지 뭉치를 꺼내 벌금을 적어 내밀었다. 적힌 벌금 액수가 무려 오백마르크.
환율이 오백 원대였다.
독일어를 못 알아듣는 우리에게 영어 설명이 더해졌다. 기차를 갈아탈 때 다시 표를 샀어야 했단다.
일부노선 요금이라 턱없이 쌌을 테니 우리나라였으면 전체 노선 요금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었겠으나 그 요금이 싼지 비싼지 알턱이 있나. 더구나 매표 한 번으로 목적지까지의 운임을 다 포함하는 편리한 우리나라 전철 운임 체계 덕에 갈아타면서 승차권을 다시 사야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차를 갈아 탄 순간 무임승차 중이었던 거다.
독일에 입국한 지 일주일 밖에 안돼 시스템을 몰랐었다, 여권이 증명해 줄 거야라고 변명하며 여권을 꺼내자,
돌아온 단호한 한마디는,
“노 잉글리쉬!”
어찌나 단호한지 하던 말이 쏙 들어갔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였다. 동료가 더듬더듬 독어를 하기 시작하더니,
곧 어찌어찌 상황을 설명하는 거였다.
그제야 단속원이 여권을 받아 쥐고 확인하는 제스처를 했다. 상황은 납득된 눈친데... 잠시 얼굴에 갈등이 스치더니 그래도 벌금은 내야 한단다. 자기는 영어를 마음껏 한다.
말할 기회를 포착하자, 여권에 있는 입국스탬프를 손가락으로 짚어주며 우겨보았다.
일주일 만에 너희 시스템을 어떻게 다 아니...
우린 너희 나라가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북페어에 참석한 사절단(? 절대 아니고요. 그냥 회사원ㅋㅋ)이야. 게다가 우리 내일 출국해요...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 압박이 됐었던 듯하다. 급 태세를 바꾸더니 벌금을 면제하는 대신 바로 하차하란다.
우리는 그렇게 기차에서 쫓겨났다.
다행히도 ’ 점잖게 ‘.
정거장 플랫폼에 내려서자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벌금 25만 원에 영혼을 털린 듯했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30년 전엔 벌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다음 기차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너무 길고
여행의 설렘은 이미 사라지고
하이델베르그여 안녕... 가보지도 못한 채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역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15년 후 나는 하이델베르그에서 30분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ㅎㅎ)
동료는 빈에서 유학했단다. 귀국 후 독일어를 쓸 기회가 전혀 없어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궁지에 몰리자 단어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더란다.
역시 언어는 배우고 볼 일이다.
사실 옥신각신 할 것 없이 벌금티켓 받아 쿨하게 구겨 넣고 출국하면 그만이었을 거다.
젊었던 시절, 그 자리에서 해결해 보겠다고 애쓴 걸 생각하니 고지식하고 순진해 우습기도 하고 추억이 되었으니 재밌기도 하다.
옛날 여권 어딘가에 "면제된" 노란 티켓이 접혀 들어 있을 거다. 노란색이었던가, 분홍색이었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오백마르크...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름- 마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