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사진 설명. 소강이 입양 직후. 가장 작은 사이즈 옷조차 헐렁하게 컸던 시절. 소강이 1.1킬로그램. 대강이 8킬로그램.)
소강이가 막 유기견 보호소를 나와 임보처에서 치료를 시작했을 즈음,
저는 막 은퇴를 하고 집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자 대상포진을 시작으로 온갖 잡다라한 병이 몰려왔고 약을 먹으며 큰 강아지 대강이와 시간을 보낼 때였죠.
대강이에게 필요한 애견 관련 정보를 찾느라 인터넷 써핑 중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소강이의 소식에 이끌려 카페에 가입하고 랜선 이모 중 하나가 되어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곧 소강이를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입양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시간이 남아도니 임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죠.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지 한 달 정도일 때였어요. 소강이가 치료받던 병원에서였죠.
처음 소강이를 안아 들었던 그 느낌...
지금도 생생합니다. 딱 귤 한 개 든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런데 작디작은 몸에서 놀랍도록 강한 의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어요. 팔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처음 만나자마자 가벼워서 놀라고 힘이 세서 놀랐더랬죠.
그 작은 강아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삶을 향한 의지 같은 기운에 제 기가 눌리는 것 같은 강력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강한 의지 = 드러븐 ‘승질’ ㅋㅋㅋ
버려졌던 기억과 척추가 부러지는 고통을 인내하는 동안에 갖춰진 성품일 수도 있는데 소강이는 앙칼지기가 앙칼지기가… 여하튼 대단했습니다.
그 당시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소강이를 맡아 준 임보가정은 다견 가정이었습니다. 그 댁엔 터줏대감도 있지만 몇몇 임보견들이 짧거나 길게 임시로 지내다가 입양을 가곤 했거든요.
그곳에서 소강이는 자기보다 늦게 온 임보견들에게는 예외 없이 쌈박질하면서 텃세해 대던... 양아치였습니다. 후지마비로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보다 대여섯 배는 큰 개들을 상대로 말이죠. 그 ‘승질’ 덕에 길고도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 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소강이를 입양하던 날 임보맘께서 소강이 다음엔 더 이상 입양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귀띔할 정도였죠.
소강이의 견생 2막은 놀라웠습니다.
소강이의 임보를 맡아 주신 임보맘(임시보호자)은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 같았습니다.
먹이고 재우고 사랑해 주는 건 당연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통원치료하고 집에서는 매일 수영을 비롯한 재활운동을 시켰죠. 장애 있는 소강이를 돌보는 일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매일 재활일기가 올라왔습니다. 소강이를 향한 임보맘님의 애정이 고스란히 읽혀졌습니다.
한쪽 다리에 신경이 살아나던 날,
나무막대기 같던 다리 관절이 구부러지던 순간,
침 맞는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
한쪽 다리에 힘이 생겨 순간이나마 설 수 있게 된 날,
한걸음도 채 안되는 반걸음 걸은 것 같던 날,
이 모든 치료와 재활 과정을 동영상으로 카페에 올려준 덕분에 소강이의 인기는 카페에선 BTS급이었습니다.
그리고 7개월 후, 소강이는 임모맘과 랜선 이모들의 그 모든 선의와 헌신에 다시 네 발로 걷는 기적으로 보은 했습니다.
소강이가 네 다리로 걷는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 카페는 온통 축제분위기였습니다. 드디어 입양이 거론되었고 공지가 떴고 심사를 통과해 …… 제게 입양되었습니다.
당연히 입양신청을 한 가족이 우리말고도 여럿 있었어요. 그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시간이 많은 은퇴자라 선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강이는 그 이후로도 간헐적 병원치료와 꾸준한 재활이 필요했거든요.
우리 가족에게 합류할 때 소강이는 추정나이 3살이었습니다.
앙칼진 소강이가 대강이의 순둥함에 스며들어 ‘이쁜데 착하기‘까지 한 순순한 강아지가 되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이쑤시개만큼 가늘었던 갈비뼈가 젓가락 굵기로 변하는 것보단 빨랐어요. 뭐 한 2년… ㅎㅎㅎ 그때까지는 마냥 똑 부러진 깍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