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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 Jan 04. 2017

[오후 6시]  달걀의 나비효과, AI

AI를 예방하는 실천 가능한 방안, 동물복지형 축산




곰팡이 냄새,
멈출 줄 모르는 소음,
녹슨 철창,
햇살 한 점 없이,
한 몸 누이기에도 비좁은 공간,

그 안에서 먹는
매일 똑같은 쓰디 쓴 식사.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숨막히는 이런 삶을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곳곳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은 이미 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AI, 그리고 혼란


요즘 AI(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나라가 더 어지럽습니다.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살처분된 닭의 수는 약 3000만마리. 서울・경기 인구를 다 합쳐도 3000만이 되지 않습니다. 최단기간 최악의 피해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왜 이렇게 피해가 커졌느냐’에 대한 공방이 오가고 있습니다. 허술한 방역 시스템과 전문 인력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는 계속해서 발생해 온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AI 가 발병했고 그때마다 수백 억에서 수천 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지난 12월 14일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방역 조치를 위해 살처분된 가금류는 3873만 마리이며 재정 소요액은 약 6218억원이라고 합니다.


방역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사후 대책입니다. 한번 AI가 발생하면 최소 수백 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피해가 발생합니다. 사후 대책으로 이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피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예방책이 필요합니다.




AI의 원인, 공장식 축산


예방책을 세우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철새의 이동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원인이죠. 하지만 철새들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AI 발병 원인으로 제기되는 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입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2006년에 이미 AI를 포함한 동물 전염병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을 꼽은 바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고 배설물과 먼지로 공기가 극도로 나빠진 사육장은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확산되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운동량이 부족한 채로 자란 닭은 면역력마저 저하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사료 대비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만들기 위해 닭의 품종을 획일화 한 탓에 유전적 다양성마저 줄어들었으니, 질병이 발생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습니다.


공장식 축산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이 환경에서 발병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전염병이 돌면 살처분이 진행되고 농가는 피해를 입겠죠. 국가는 재정 지출을 감수해야 합니다. 관련 업계에 미칠 여파와 매립된 동물들이 부패하면서 수년간 토양 오염과 수질 오염을 일으키는 것까지...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 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순 없습니다.








실천 가능한 대안, 동물복지형 축산


공장식 축산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장 축산물을 안 먹는 것은 해결방안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 대안이 바로 동물복지형 축산입니다.


Photograph by Aiko @Flicker (https://www.flickr.com/photos/aikos/3742362435)


동물복지란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 책임을 지고 동물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보장하는 것을말합니다. (인간과 동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환경조건과 경영관리를 동물의 행동에 맞추어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축산의 생산성을 높여 안전하고 우수한 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동물복지형 축산입니다.


동물복지형 축산은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서간 주자는 영국입니다. 영국 정부에 의해 세워진 농장동물복지위원회(The Farm Animal Welfare Council, FAWC)에서는 1979년부터 영국의 가축사육, 수송, 도축, 시장, 정부의 입법 등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자문을 해왔습니다. 1993년에는 동물복지를 위한 “5대 자유”를 제정하여 축산관련업계에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5대 자유”를 기반으로 전 세계 동물복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EU로 확산되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영국과 EU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달걀 라벨링 제도는 소비자가 동물복지 달걀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생산 방법, 생산국가, 그리고 생산자 번호를 달걀과 포장재에 표시해두는 것이죠. 라벨의 맨 앞에 적히는 숫자는 생산 방법을 나타내는데, 0은 넓은 목초지에서 방사되어 자유롭게 자란 닭의 달걀을, 3은 우리에 갇혀 자란 닭의 달걀을 의미합니다. 이 방법을 통해 영국에서는 0 또는 1이 표시된 달걀의 소비가 2003년 31%에서 2011년 51%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제공된 정보 덕택에 더 많은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달걀을 소비하게 된 것입니다.




동물복지 인증마크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가 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마크’입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이 본래의 습성 등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관리하는 축산 농장을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2012년에 산란계 농장, 2013년에 양돈농장, 2014년에 육계 농장에 대한 인증제가 도입되었고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동물복지 인증마크, 무항생제 인증마크, HACCP 인증마크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 인증마크와 유사한 마크가 두 가지 있습니다. 무항생제 인증마크와 HACCP 인증마크입니다. 무항생제 인증마크는 무항생제 축산물, 즉 항생제나 합성향균제, 호르몬제가 첨가되지 않은 일반 사료를 급여하면서 인증 기준을 지켜 생산한 축산물에 부여됩니다. HACCP 인증마크는 위해방지를 위해 마련된 식품안전관리체계(HACCP)를 준수한 제품에 부여되는 마크입니다. 두 마크 모두 동물의 사육 밀도와 관련된 제한 사항은 없기 때문에 동물복지 축산을 하지 않더라도 받을 수 있는 마크입니다. 동물의 복지보다는 소비자의 안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인증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항생제 제품이나 HACCP 제품이 소비자에게 이로운 제품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을 멈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닙니다. 공장식 축산을 줄여나가는 일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공감 소비'가 만들어내는 나비효과


Photograph by John Morgan @Flickr (https://www.flickr.com/photos/aidanmorgan/4634923304)



동물복지 인증 달걀은 비쌉니다. 20%정도의 금액을 더 줘야 살 수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약 천 원 남짓한 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을수도 누군가에게는 클수도 있는 돈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 투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변화는 동물복지 달걀에 투자하는 천 원에서 시작됩니다. 천 원의 투자를 기꺼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전향하는 농가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농가가 늘어나면 당연히 더 많은 닭들이 더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겠죠. 우리는 더 안전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가 커져 국가 차원에서 동물복지축산을 장려하고 시스템을 갖춘다면 생산할 때 드는 비용도 줄어들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공장식 축산이 줄어들면 그로 인해 발생했던 환경오염까지 줄어들게 되니,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동물, 환경 모두를 위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것이 한 사람의 '공감 소비'가 만드는 나비 효과입니다.



Letter는 그 한 사람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기를 바랍니다.



작은 실천이 일으킬 큰 변화를 꿈꾸며.



Warmly,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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