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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30. 2017

역촌동 골목에서

동네에서 노는 또 다른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나는 골목에 대한 작업을 한다. 가끔 한다. 몇 년 전, 대학로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에 7개월가량 참여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혜화역 중심가에서 한 블록만 올라가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조용한 주택가에 관심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북적이는 곳으로 더 몰려가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만 찾는 걸까?


 주택가다 보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 또한 실례가 되겠지. 그렇지만 거주자들마저도 그 길을 그냥 지나다니는 길, 목적지를 향해 스쳐가는 길로만 인식하고 있진 않을까? 그 '길' 안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는 일상의 공간, '동네의 길'에 새로운 시선을 건네는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우리 동네'에 관심이 생겨났다.


 1년 전 우리는 지금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은평구로 거주지를 옮긴 지는 3년째다. 은평구로 이사 오기 전에는 마포구에서 오래 살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은평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때의 우리는 은평구에서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기보다는 마포구에 접근하기 쉬운 동네를 찾았다. 내 몸은 은평구에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마포구 주민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우리는 은평구에서도 더 깊숙한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은평구는 마포구의 옆 동네가 아니라 그냥 은평구였다.



 우리는 새로운 동네에 관해 너무 몰랐다. 우리 동네는 차 다니는 큰 길 안쪽 골목에도 상권이 발달해 있다. 내가 이게 참 신기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남편은 "그건 안쪽이 가게세가 저렴하기 때문이야."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겐 그 이유만이 전부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지금까지 내가 인식해 온 동네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이 골목길을 따라 촘촘히 들어서 있고,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없는 가게가 없다.


 특이한 건 정말 다양한 공방들이 있다는 건데,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뭐든지 다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지어 해금을 만드는 공방도 있다.



 이전까지 나는 쉴 시간이 부족했고, 쉬는 날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사 온 뒤로는 자꾸만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싶어졌다. 더 느린 시간을 갖고 싶었고, 동네 더 깊숙이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싶어졌고,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사람들은 소위 유명한 동네를 찾아다니길 좋아한다. 그곳엔 예쁘게 잘 꾸며진 공간들이 많고, 더 많아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공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있거나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간에 대한 욕망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분명 이러한 취향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멀리 나가지 않고 가까운 '동네'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아, 단연코 확신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게 스며들어온 생각이니까.


 일단 남편부터 내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잡지나 블로그, 방송에 자주 소개되는 장소는 터질 것처럼 사람들로 붐비니까. 그들이 떠난 그들의 동네는 텅 비어있을 테니까. 그래서 한번 해 보고 싶어졌다. 정말로 가까운 데에서 나의 공간을 찾아보자. 내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공간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녀 보자. 동네에서 노는 조금 다른 방법 찾기' 쯤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에 꽂히고 말았다. 나무였다. 말 그대로 나무, 더 넓게 이야기하자면, 풀, 식물, 화단, 모든 자연의 초록.



 우리 동네에는 빌라가 굉장히 많다. 아파트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마당 있는 단독주택들만 간간이 등장한다. 나머지는 전부 다 빌라다. 빌라 사이를 휘젓고 돌아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빌라 앞 화단, 다른 나무들에 비해 좀 잘 빠진 곡선을 한 소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었다. 소나무 사진을 찍으며 나는 다른 빌라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놓았나 둘러보았다. 옆에 빌라에도 작은 화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빌라에도, 그 뒤의 빌라에도, 건너편 빌라에도 화단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모두 '화단'이라 표현하지만 사실 모양도 크기도 다 달랐다. 여유 있게 나무가 심겨져 있는 곳도 있고, 빠듯하게 겨우 나무 한 그루 들어서 있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큰 나무가 살기엔 비좁아 키 작은 나무만 총총총 서 있기도 했다. 화단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빌라 앞에는 하다못해 큰 화분 몇 개라도 놓여 있었다. 화단은 건물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느냐도 달랐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빌라 건물에는 1층 주차장 안쪽에 깨끗하고 새침하게 화단이 마련돼 있었다. 어떤 옛날 건물에는 뒤편 건물과 담 사이 빡빡한 공간에서 나무들이 억세게 자라나 있었다.



 어쨌든 어디에나 나무, 화초가 심겨져 있었다. 물론 초록 한 잎 볼 수 없는 건물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거의 모든 건물이 초록을 곁에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초록을 좋아하는구나.' 이건 좀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이나 숲, 들과 같은 큰 자연을 옆에 두지 못해도 작은 자연이나마 갈망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걸까? 초록이 빈 공간을 채우는 모습은, 나로선 어느 날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닐 거다. 지금까지 죽 그래오지 않았을까?



 평범하고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거라 해도, 나의 눈으로 바라보며 스스로 발견한 것이기에, 우리 동네 초록은 내게 특별하다. 나는 걷는 길을 확장해 가며 화단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화단뿐 아니라 동네의 각종 재미있는 것들이 함께 발견된다. 옆으로 구부러진 전봇대, 방사형으로 어지럽게 얽혀있어 쳐다보면 멀미가 나는 전선줄, 무척 세련되었는데 주거지인지 사무실인지 알 수 없는 건물, 동네 한복판에 자라난 엄청 얇고 높은 나무,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 주차난을 겪지 않는 골목, 담쟁이가 어마어마하게 뒤덮은 주택, 화분이 정말 많은 세탁소, 할머니가 고추를 아주 전문적으로 말리는 골목.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들이 있다. 한동안은 이렇게 호기심에 코를 벌렁거리며 골목길을 산책할 것이다. 난 점점 더 우리 동네가 좋다. 내가 정말 어딘가에 엉덩이를 푹 깔고 앉은 편안한 기분도 든다. 그리고 동네에서 노는 또 다른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갈수록 그게 더 궁금해진다.





글/사진 김혜원

오브제 작가. 4년 차 은평구 주민이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고, 공간/오브제/책이 결합된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특기를 가진 예술가들과 공연/전시 외 여러가지를 하는 ‘다방구밴드’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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