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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06. 2018

봉천동, 낙성대동, 그리고 샤로수길

요즘은 우리 동네가 어색하다

 군 전역 후 봉천동(지금은 낙성대동)에 터를 잡았다. 직전에 동네 이름이 봉천7동에서 낙성대동으로 변했다. 위치는 여자친구(지금은 아내)집 근처였다. 당장 집을 구할 보증금이 없어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신문 배달을 하면 신문사 지국에 딸린 방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조용한 동네였다.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 있긴 했지만 그렇게 번화하지 않았고, 고시촌 신림동, 달동네 봉천동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베드타운이었다. 그런 조용한 동네에서 난 연애를 하고, 취업을 준비했다.


 3~4년 후. 어느 날 동네 골목에 조그만 카페가 생겼다. 오래된 구둣방과 미용실 건너편이었다. 잘생긴 젊은 오빠가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했다. 나도 가고, 여자친구도 가고, 장모님(당시에는 여자친구의 어머님)도 자주 이용했다. 카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들 사이에서는 '오빠집'이라고 불렸다. 죽었던 동네 거리가 조금씩 살아나는 듯했다.


오빠집 카페였던 자리. 2~3번 가게가 변했다.


 그쯤 회사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매년 트렌드에 관한 책을 내는 강사의 강연이었다. 강연 중에 '골목'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내년에는 '골목'이 뜰 거라고. 그때 대출을 받아서라도 골목길 끝자락에 있는 조그만 상가를 매입했어야 했나.


 동네가 살아남과 동시에 단골가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돼지고기, 쇠고기뿐 아니라 철에 맞춰 수산물과 각종 음식을 주문하면 척척 만들어주던 단골 '정육식당'이 있었다. 사장님과 형, 동생하면서 잘 지냈고, 가끔 집으로 가는 길에 들려 저녁식사를 얻어먹기도 했다. 동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아 금요일 저녁이면 예약을 하지 않고는 자리를 얻을 수 없던 곳, 풍채 좋은 스킨헤어 사장님의 호탕한 웃음 때문에 퇴근길에 고기 한 근을 사게 되는 곳이었다.


 어느 날 사장님이 가게를 접는다고 했다. 권리금을 받아 용인에서 편의점을 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 자리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이 들어왔다. 한참 후에 ‘정육 식당’ 형님이 새로 들어선 레스토랑을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정육식당' 바로 옆, '리쌍 미용실'도 사라졌다. 컷을 하고 나면 시원하게 머리를 감겨주던 곳인데, 많이 아쉬웠다. 그 자리에는 트렌디한 카페가 들어섰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떠나는 정육점. 본문에 나오는 정육식당은 아니다.


 솔직히 이 뜨는 동네에 서점을 차리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권리금 없는 곳은 거의 없었고, 기본 월세가 100만원이었다. 공인중개사들은 나를 물정 모르는 놈으로 봤다. 그들이 옳았다. 정작 동네서점은 샤로수길과 한참 떨어진 곳에 생겼다.


 3~4년 사이에 동네가 완전 변했다. 주말 저녁, 편한 옷차림으로는 동네 마실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사람들이 골목골목마다 장사진을 치고, 와인 잔을 기울이고, 사랑을 속삭인다.


 관악구청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건 처음 봤다. '샤로수길'이라는 표지판을 골목 입구에 세우고, 아스팔트로 골목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는 한글로 '샤로수길'이라는 페인트가 칠해졌다.


구청에서 정비한 보도 블럭.


 좋은 점도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아내와 외식을 하려면 주로 신림동 순대타운으로 갔다. 지금은 동네 새로 생긴 음식점에 들어가면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봉사리(봉천동 사거리)’, ‘신사리(신림동 사거리)’라고 불렸던 곳을 ‘샤로수길’이라고 말하면 1년 전만 해도 비웃음을 당했다. 지금은 비웃진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 동네가 어색하다. 일반 가정집 1층의 벽이 사라지고 쿠바 음식점이 들어섰다. ‘설마 여기까지 개발되겠어?’ 하던 곳까지 개발된다. 매일 매일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오는 동네 골목길의 변화가 처음에는 새롭다가 이제는 무섭다. 앞서 사라졌던 가게들처럼 나도 더 이상 우리 동네에 못 살고 떠나게 될까봐.





글/사진 신동익

관악구 거주 8년차 주민. 출판사 웅진주니어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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