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Feb 10. 2018

반대과정이론 망원동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한동안 가사를 제외한 글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음악 말고 다른 형태의 일을 해 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번아웃 증후군이었으리라. 새로운 곡을 꾸준히 발표하고 재밌는 활동도 많았지만, 불이 꺼진 집에 들어오면 그만큼의 공허함 또한 컸던 것 같다.


 안녕하신가영 이름으로 발매했던 첫 EP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은 반대과정이론이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사람은 무의식중에 항상 자신의 감정이 중립에 위치하길 원하고,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서로 대립하는 두 쌍의 정서가 동시에 공존하는 반대과정이론이 존재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기쁨을 느꼈을 때 반대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공연과 상관없는 슬픔이 형성되면서 끝과 끝에 있는 감정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내게 망원동은 반대과정이론과 닮은 동네다.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겨울이 왔고, 그때 갑자기 고향인 부산보다 더 고향 같은 동네 망원동에 대해 애정 듬뿍 담긴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애정이 마침 뜨겁지 않을 때여서 흰색 도화지 위에 홀로 서서 점 하나 찍지 못한 채 또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망원동에 7년 정도 살았다. 이 짧은 기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나처럼 새롭게 유입된 많은 사람과 오랜 시간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많은 사람이 물과 기름처럼 공존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마저 생겨났다. 좋아하는 가게들은 주말이면 북새통이 되었고, 그래서 주말이면 나도 그들처럼 다른 동네를 찾아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동네 친구들과 작은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곳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온다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도 생겼다.


 반대과정이론에 이런 가사들이 나온다.


 너를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면
 어쩌면 너도 나를 사랑했을 텐데.


 이 노래처럼 망원동에서 나도 여러 추억들이 생겼다. 어떤 날에는 비가 내렸고 또 다른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았다. 그러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인생은 끊임없이 그런 굴곡들의 연속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흐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맑은 날은 늦게나마 꼭 찾아왔다.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상을 살아도 완벽하게 같은 하루가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다.



 조금은 새로운 마음으로 익숙한 곳을 걸으며 바라본 망원동은 늘 그렇듯 모르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빈다. 그중에는 남은 하루가 즐거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타깝지만 비교적 좋지 않았던 하루로 기억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었으면. 그들 중 한 명인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 몇 시간 남지 않은 하루를 그려본다. 유난히 추운 하루였지만 그동안 정든 동네를 새삼스레 곱씹어 보며 마무리할 하루의 끝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따스하게 느껴지는 오늘 하루는 맑음.





글 안녕하신가영

나, 친구, 막내딸, 아는 사람,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



그동안 <익숙한 여행, 우리 동네>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본 위클리매거진은 추후 <말 걸어오는 동네> e-book으로 선보이겠습니다.

이전 11화 양지서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