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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31. 2016

페르난다 할머니의 계절 요리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아직 피렌체를 걷고 있다 #2


 언젠가, 아마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친구 한 분이 자신의 집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우리에게도 나눠주셨는데,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생무화과였다. 그저 달기만 했던 말린 무화과와는 달리 잘 익은 생무화과에서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독특한 맛과 향이 났다. 그 오묘한 맛의 매력에 빠져 며칠에 걸쳐 내 몫의 무화과를 아주 천천히 아껴 먹었고, 그럼에도 하나씩 사라지는 무화과의 숫자를 세며 어찌할 바를 모르곤 했다.

 마지막 남은 무화과를 먹을 땐 너무 아쉬워 울상을 지었는데, 페르난다 할머니가 우리 집 정원에서도 곧 무화과 열매가 열릴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 무화과가 열릴 즈음에는 여름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으므로 결국 난 우리 집 정원에서 수확한 무화과는 끝내 맛보지 못했다.



 페르난다 할머니는 계절을 따라다녔다. 계절이 할머니를 따라다녔는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다채로운 향의 생허브를 이용한 요리와 함께 이런저런 과일을 썰어 차갑게 만들어 먹는 마체도니아라는 디저트를 즐겨 드셨다. 이 여름용 디저트는 봄이나 겨울에는 오로지 딸기만을 이용해 레몬즙과 레드 와인, 설탕을 뿌려 하룻밤 냉장고에 재워두는 것으로 바뀌는데, 나는 사실 이 변칙적인 마체도니아가 더 좋았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라는 요리를 만들었다. 폴렌타는 뜨거운 가스불 앞에서 오랜 시간 국자를 젓는 인내 끝에 만들어지는 음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을 혹은 겨울에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의 겨울은 여름만큼이나 혹독하다. 마침내 사계절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페르난다 할머니는 감자로 만든 뇨끼를 크림소스에 버무려 먹고는 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녀는 부엌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도마와 밀대 방망이를 늘어놓고 잘 삶아진 감자를 으깨 밀가루를 조금씩 흩뿌려가며 뇨끼 반죽을 만들었다. 반죽의 마지막 장식은 포크를 이용해 지그시 눌러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감자의 식감은 겨울과 잘 어울렸다. 모포처럼 혀를 감싸주는 그 질감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나는 계절감이 느껴지는 정원과 그 정원이 내다보이는 부엌에서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참으로 좋았다. 일요일 아침, 우리 집 식탁에 올린 토마토 샐러드에도 그녀에게 배운 요리 철학을 조금 뿌려놨을지 모른다. 토마토, 샐러리, 발사믹 비네거와 올리브 오일. 싱그럽고 향긋하며, 어딘지 모르게 깊은. 우린 그런 형용사들로 또한 봄을 수식하기도 하니까.





글 마르가레타Margareta

꽃이 좋고 요리가 좋다. 식탁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다이닝 잡지 ‘바앤다이닝’에서 마케터로 근무했고, inspired by jojo에서 플로리스트로도 일했다. 요즘은 가야할 곳이 많기 때문에 거기서 꼭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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