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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ul 08. 2020

카드값

시가 오는 로마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시가 오는 로마 #3





삶 / 황인숙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 『슬픔이 나를 깨운다』(문학과지성사, 1990)


머릿속에 각인되는 시가 있습니다.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머릿속에 꽉 박혀서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시가 그랬습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어른의 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에 관해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외상값’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상을 오래 살아 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옛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여섯 살이었나 일곱 살이었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습니다. 종일 엄마 가게에서 혼자 놀고 밤 9시에 엄마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그때 엄마는 동네 중국집에 들렀습니다. 외식을 안 좋아하는 엄마의 생활 습관을 알고 있었기에 짜장면이라도 먹으려는 것은 아닐 텐데 왜 이곳에 들어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는 어떤 질문도 없이 가만히 엄마를 따르기만 했습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어서 중국집 내부는 지저분했고, 테이블도 네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 테이블 중 카운터와 가장 가까운 구석 자리에 중국집 주인아주머니와 엄마가 마주 앉았습니다. 저는 엄마 옆에 앉아서 벽에 걸린 작은 TV를 보는 척했습니다. 그게 어린 시절 저의 특기였습니다. TV를 보는 척하기, 잠이 든 척하기. 어른들에게는 눈에 빤히 보이는 속임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먼저 커버린 어린아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습니다.



엄마는 지갑에서 현금 3만 원을 꺼내 중국집 주인아주머니에게 줬습니다. 별다른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저는 엄마가 조금 전에 가게 문을 닫으면서 마지막으로 금고에서 3만 원을 꺼내던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오가는 데 흔한 ‘고맙다’ ‘별말씀을’ 이런 말이 오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저는 엄마가 그 중국집 아주머니에게 큰돈을 빌렸었고, 그때 준 3만 원은 매일 줘야 하는 이자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이라는 것과 아이들은 멀어야 한다며 집세나 빚, 경제 사정 같은 것을 자식들 앞에서는 일절 말하지 않던 부모님 덕에 저는 지금까지도 경제적인 것에 좀 서툰 편입니다. 아마 그날도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저를 돈을 갚는 자리에 데려갔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 앞에서 돈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준 건 세뱃돈 말고는 없었거든요. 그때의 엄마는 이 시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25일, 저는 월급 명세서를 받았습니다. 투어 가이드이다 보니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받는 액수가 다릅니다. 성수기 달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큰 액수가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관념이 없는 저는 그런 액수를 봐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카드 명세서가 도착했습니다. 월급보다 정확히 20만 원이 더 큰 금액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에 대한 관념이 없어서 그런지 큰 감흥이 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황인숙 시인의 시를 오마주해서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삶 / 박무늬


내 인생은 망했다.

250만 원을 벌었는데 270만 원을 썼다.

이 와중에 담배가 피고 싶은 걸 보면 나는 정말 망했다.

이건 다 엄마 탓이다.





글/사진 박무늬

대학교에서 언어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이 막막하고 의욕도 없어서 작은 카페와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친구와 함께 첫 번째 책 『매일과 내일』 을 내고, 출판사 사업 신고한 것이 아까워서 두 번째 책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데,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서 이탈리아 로마에 왔다. 현재 유로자전거나라 회사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하며, 사람과 삶에 부딪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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