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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Nov 10. 2016

그녀의 목소리가 필요한 계절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노동요를 틀기 위해 음원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그녀 풍의 9집을 보았다. 인터넷 창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습관적인 클릭처럼 아무렇지 않게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이소라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지금 내가 그런 시기에 서 있던가. 낭만, 서정, 약간의 비애를 즐길 여유도, 이유도 없지 않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가을이다. 오늘 오후부턴 가을비가 내린다고 했다. 마감일이 정해졌고, 네 편의 글 중 한 편의 반을 쓰다가 꼬박 막혀버렸고,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라는 가사에 취해 쓸 글도 아니거니와 누구도 그런 글을 바라지도 않을 텐데, 이런 계절엔 누구라도 이소라의 목소리가 필요해진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사람은 계절 아래 웅크려 계절을 벗어나지 못한다. 계절은 나를, 당신을, 우리를 규정한다.


 텔레비전에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흐르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그녀 풍의 가창법이었다. 목소리는 마이크로 흘러들어 가지만 그녀가 가사를 삼키고 있다는 걸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어느 작은 골방에선 그녀를 따라 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되고 말아서. 밤 중에 라디오를 틀어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잠든 적도 있었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가 지나가고 자정 종이 울리고 나서야 잠들었지만, 어쨌든 그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는 주로 웃음을 터트렸다. 허스키하고 삼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녀가 영화 음악과 함께 대사의 일부를 읽어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서 들었던 영화 중 한 편을 훗날 스물세 번 보았다. 더빙판을 더 좋아하는 그 영화를 볼 때마다 아직도 그녀가 라디오에서 말했던 마지막 대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소라의 노래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는 분명 있다.


 이 글도 일인가 싶고, 어쨌든 다시 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 말마따나 잠시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여 조금 더 조악한 스피커 주변에서 서성인다. 누가 뭐라 하든 내 사랑은 사랑이라고, 나는 홀로 간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사랑이란 말을 달리 삶이라 듣는다고 해서 크게 오해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삶 자체가 사랑이라고 낭만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는 시기이자 계절이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를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담은 잡지라고 했는데 정작 사랑 이야기는 한 편도 없다. 아무리 일이라 해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겐 이소라의 노래가 필요하다.




여행 매거진 BRICKS는 현재 웹진 형태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브런치의 '매거진 BRICKS Life'에는 정규 호에 싣지 못한 편집자의 이야기, 여행과 무관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 가끔은 인터뷰 비슷한 사는 이야기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글/사진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정작 자신은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 중.

https://brunch.co.kr/@bergo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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