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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13. 2017

홍콩의 얼굴들

 여행을 가면 거리 스냅을 주로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광각 렌즈로 자연과 건축물을 시원하게 찍는 것도 좋겠지만, 당시의 소리, 냄새, 햇볕과 조명의 세기까지 느껴질 것 같은 여행 사진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지요. 한 장 한 장을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 같은 평범한 여행자들은 기록의 의미로, 때로는 기억의 연장으로 사진을 찍기 마련입니다. 실제보다 LCD 화면을 더 많이 들여다본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은 낭비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대체로 그 균형을 맞출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찍어 온 사진은 마음에 들기도 하고, 의외의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프레임 안에 의도하지 않았던 인물을 발견할 때면 마치 그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기까지 합니다.


 여행은 무엇을 만나러 가는 걸까요. 역사의 흔적? 예술의 휘장? 자연의 경이? 또는 타인의 인생? 물론 답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그냥 떠나는 게 좋아서 떠나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책을 읽듯이 여행을 가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지극한 방법 중 하나라구요. 그래도 이번엔 사람의 얼굴을 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저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를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여행의 기록이 아닙니다. 저희가 홍콩에서 스쳐간 누군가의 한나절, 휴식 시간, 특정 거리를 지나치던 한 순간의 기록입니다. 우리도 몇 시간 후에 그러고 있을, 일상의 단편들입니다.





몽콕 부근. 수박을 긁는 남자.




 한국으로 치면 김밥천국 정도 될 홍콩의 어느 차찬텡. 첫끼는 이곳에서 먹었다. 비행기는 태풍 때문에 다른 곳도 아닌 인천공항에서 8시간이나 지연되었고, 평균 한 시간에 한 캔 씩 맥주를 마시며 출발을 기다렸다. 사골 국물 속 고깃덩어리처럼 취했다가 첵랍콩 공항에서 내리자 술이 깨기 시작했다. 거북한 속에 홍콩의 길거리 음식이 맞을지는,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의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다음 두 시간 동안 또 평균 한 시간에 한 캔 씩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남자는 유난히 분홍색을 좋아했다. 어느 하루, 돌연 미적 감각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그의 가방이며 신발 모두 낡을 만큼 낡아 있었으니까. 남자는 매일 같이 저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오는지도 몰랐다.




 란타우 섬 북쪽, 샴 왓이라는 작은 마을의 일곱 번째 식당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손녀가 있었다. 할머니는 주문을 받고 손녀는 라면을 끓였다. 할머니는 라면에 고추기름을 넣어서 먹으라고 일러주셨다. 나에겐 딱 맞는 조언이었다.




 란타우 섬의 어촌 타이 오에선 복잡한 시장 골목을 걷는 맛이 있다. 상점에선 건어물이나 수제 맥주, 찻잎 등을 팔았다. 어느 구역까지는 여행자들로 가득했고, 어느 구역부터는 쓸쓸하리만치 인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층 버스의 2층 맨 앞에 앉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그 자리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 그 중간쯤에 있다.




 침사추이의 한 술집 테라스에서 만난 남자는 시카고 컵스의 팬이었다. 그는 지나다니는 사람을 붙잡으며 자신의 구단을 응원했다. 그 덕분일까. 며칠 후, 시카고 컵스는 2016년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에서 108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어쩌면 이 남자는 클리블랜드의 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 사람들도 길거리 음식을 참 좋아한다고 한다. 저렴한 블루 걸은 홍콩의 국민 맥주쯤 된다고 한다. 싸고 먹을 만하고 간편한 걸 좋아하는 건 우리 모두의 본능이다.




 홍콩엔 동남아시아에서 온 가정부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집안일을 하는 건 아니다. 노래 잘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홍콩의 라이브 펍 무대에 오르면, 그대로 콘서트가 시작되는 기분이이다. 특히 사진 속 남자는 (당신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으므로 마음껏 쓰자면) 에드 시런의 뺨을 살짝 때려줄 것 같았다.




 삼수이포의 전자제품 시장에선 카드놀이가 한창이었다. 무슨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손님보다 좋은 패가 오기를 고대한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소호 거리는 이곳에 놀러 온 서양인들에 의해 까닭 없는 자체 발광을 하고 있었다. 가끔 여행자들이 그들의 고향을 여행지에 몰고 온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나는 무엇을 들고 왔을까?




  PMQ는 학교였다가 경찰 기숙사였다가 이제는 복합 문화 공간이 된 유서 깊은 장소다. 건물의 지붕 없는 중앙 홀에선 잡화나 옷, 커피를 파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입혀놓고 빈말이라도 잘 어울린다 말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독특한 아동복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 이곳은 할리우드 로드니까. 그를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여행 매거진 BRICKS는 웹진 형태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브런치의 '매거진 BRICKS Life'에는 정규 호에 싣지 못한 편집자의 이야기, 여행과 무관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 가끔은 인터뷰 비슷한 사는 이야기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글/사진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에디터.

https://brunch.co.kr/@bergo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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