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11. 2021

금능해변 달리책방과 앤드유 채식카페

언제쯤이 될지 모르지만 매일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제주의 서점들 #4





바람이 불지 않던 어느 겨울날,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날씨가 적당히 쌀쌀하고, 따뜻해 딱 걷기 좋은 날씨다. 제주 서쪽의 금능해변과 협재해변을 따라 40여 분을 걸었다. 


금능해변에서 본 비양도


큰 대로변과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걷다 보니 목적지인 달리책방이 보인다.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친근한 인사와 함께 달리책방이 처음이냐고 물으며 안내문을 읽어보라고 한다. 안내 문을 읽고 나자 널찍한 책방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그중 벽 한쪽에 큼지막하게 들어선 나무책장이 나를 압도한다. 아마도 달리책방 천장 길이에 딱 맞게 짰을 듯한 책장은 수천 권의 책을 품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책장을 갖고 싶어 할 텐데, 내 책장이 있다면 왠지 저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책장을 한참 바라보며 충만함을 느꼈다.



달리책방은 헌책들과 살 수 있는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장 곳곳에는 사장님이 직접 책을 읽고 쓴 것으로 추정되는 추천사들이 보인다. 헌책들은 마음껏 가져다 읽어도 되는데, 내 눈에 띈 것은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볼 만한 다른 책도 많아 눈이 쉴 새 없이 바빴지만, 욕심내지 않고 그 책만 읽기로 했다.



이번에는 살 수 있는 책을 둘러보았다. 장 그르니에의 책이 보인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책방에서는 보기 힘든 책이라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그리고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이 보여 또 한 권 덜컥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그 책을 보자 다른 사장님이 반갑게 웃으며 장 그르니에 오라버니를 아느냐고 묻는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취향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개인주의자 선언』 같은 헌 책도 살 수 있느냐 물으니 이전에는 판매도 했는데 지금은 중단한 상태라고 했다. 책을 한 권 사고, 읽을 책과 따뜻한 레몬티를 한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앉아있으니 책방의 고요하고 잔잔한 느낌이 내 몸을 감싼다. 카운터에는 두 분이 계셨는데 얼굴이 닮은 것으로 보아 자매가 운영하는 책방인 듯하다. 한 분은 카운터에서 일을 하고, 한 분은 손님을 안내했다. 두 분 다 손님이 없을 때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서점은 필히 책을 사랑하는 이가 운영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어주는 레몬티와 함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판사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개인주의는 고립된 것, 이기주의와는 다름을 강조하며 개인주의의 이점을 충분히 설명한다. 여느 작가처럼 문맥이 아름답고 매끄럽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속 시원히 해주는 책이었다. 크게 공감하며 읽었고, 통쾌함마저 느꼈다. 



한 시간 여쯤 흘렀을까 레몬티가 사라졌다. 그러자 사장님께서 다가와 따뜻한 물을 좀 더 채워줄지 묻는다. 책 읽는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꼼꼼히 신경 써주시는 느낌이 들어 공간이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레몬 티 두 잔을 홀짝이며 개인주의자 선언을 다 읽고 나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내가 앉아있던 곳을 차분히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바로 근처에 미리 봐둔 채식 식당, 앤드유 카페가 있어 저녁 식사는 그곳에서 하기로 했다. 최근 다시 채식 지향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호주 산불, 우리나라의 산불 등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소식은 다시 채식 지향적인 삶을 살자고 마음먹게 했다. 앤드유 카페에서 얼마 전부터 먹고 싶던 베지버거를 주문했다. 한쪽에 며칠 전부터 못 쓰고 있던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고, 맥주 한 잔과 버거를 먹었다. 직접 콩으로 만든 패티를 사용한다는데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듣는 DJ 배철수의 목소리와 이 풍경들이 꽤 잘 어울려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장 그르니에의 책을 읽고, 잠시 글을 썼다. 


오늘 하루 꽤 부지런히 움직이며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 언제쯤이 될지 모르지만 매일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적당히 걷고, 내 취향의 음악과 책,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로운 삶을. 





글/사진 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의 캄보디아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매거진의 이전글 먼지가 보이는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