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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09. 2016

홍콩의 옛모습을 간직한 삼수이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오래된 전자제품은 이상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신속하게 개선되는 물건이기 때문일까, 전자제품은 일이십 년만 지나도 참으로 고물 같아 보이고 참으로 구석기 시대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누렇게 변색한 플라스틱 몸체, 버튼 대신 달린 다이얼, 길게 뽑아 칼싸움을 하던 안테나와 디지털 숫자보다 매끄럽게 움직이는 아날로그 바늘까지. 그것이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비디오카세트든 카메라든 간에 세월의 흔적이 묻은 전자제품은 이 시대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향수의 진원지로 활약한다. 그러므로 홍콩에서 그런 물건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거리에 관심이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삼수이포는 홍콩 최대의 전자상가이자 최대의 재래시장이 모인 거리, 여행자보단 현지인들이 몰려드는 서민의 거리다. 그곳까지 가는 덴 많은 품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빠르고 편리한 MTR은 이번에도 단 몇 분 만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층층대를 오르자마자 재래시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충실하게 잉크로 쓰인 간판이 만국기처럼 건물 위에 달려있고, 어라, 저건 한 세기 전에 사라진 브랜드가 아닌가, 잠깐 그런 착각마저 드는 GOLD STAR나 AIWA 같은 단어를 곳곳에서 발견했다. 시간이 멈췄다기보단 굳이 시간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쯤의 의기양양함과 반쯤의 자포자기가 읽혔다. 사람도 많고 앞만 보고 달리는 오토바이도 많았지만 뜻밖에 느긋해지는 건 마음이 이 공기에 금방 적응했기 때문이리라.

 반듯하진 않아도 거의 격자로 구획된 삼수이포는 각 도로가 저마다의 시장이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라고 할 만한 곳이 압리우 거리(鴨寮街)다. 전자제품, 각종 부속품, 도대체 저걸 누가 살까 싶은 공 비디오테이프와 그나마 손길을 뻗을 만한 불법 복제 DVD 등이 이곳의 메인 스트림을 이룬다. 제조사별로 구비된 리모컨 바구니에선 잘만 고르면 영화 <클릭>에 나왔던 만능 리모컨 하나쯤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배를 드러낸 기술공 아저씨라면 사무실에 있는 마란츠 앰프에 블루투스 기능을 욱여넣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치고 대부분의 상점, 좌판은 한가한 편이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다지만, 그 현지인들도 그저 시간이 남아 구경이나 슬슬 해 볼까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네 곳의 점포 주인들은 카드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이런 판이 벌어지면 꼭 끼어드는 구경꾼들도 옆에 붙어 훈수를 두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카드의 장수를 보아 포커는 아닌 것 같고, 설마 어르신들이 원 카드나 도둑 잡기라도 하시는 중인가 나도 덩달아 흥미가 생겼다. 이러다 손님이라도 오면 분명 게임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질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무료하게 자리를 지키는 아줌마, 팔아야 할 스마트폰을 자신이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는 청년, 좌판은 없고 수레에 이런저런 잡품을 넣어 다니며 손님을 찾는 노인. 여기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인내의 문제인지 행운의 문제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성수기가 따로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삼수이포, 그리고 삼수이포와 근접한 섹킵메이에는 1970년대, 때로는 그보다 더 이전에 지어진 공공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1953년, 먹고 살자고 중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던 섹킵메이에서 대화재가 발생했다. 판자촌을 태우며 치솟은 연기는 마치 화산 분출을 앞둔 분화구의 연기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이재민은 무려 5만 3천 명이었다. 영국에서 파견된 알렉산더 그랜텀 총독도 더 이상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이재민을 위한 공공 주택 단지를 세우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도 홍콩 시내에서 볼 수 있는 낡은 아파트로 남게 되었다. 요즘의 고시원 같은 방 안에 온 가족이 모여 살고 복도 끝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줄을 서서 이용해야 하는 삶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길바닥에 나앉거나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단 낫다고 믿었다.

 저 낡은 창문과 벽은 그 각박한 순간을 직접 목도했거나 최소한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경험담을 엿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다닥다닥 붙은 삶, 옆집 사람이 화장실을 몇 번 가고 몇 번 가래침을 뱉는지까지 전부 헤아릴 수 있을 삶을 제 안에서 계속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인 만큼 삼수이포에도 식재료를 파는 시장이 있다. 7~80년대 이후, 홍콩 정부는 서너 층의 건물을 짓고 길거리에 있던 재래시장을 그곳으로 옮겼다. 워낙 땅덩어리가 부족한 도시라 공간도 확보하고 위생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좀 낡은 쇼핑몰이구나 싶은 그런 건물에 들어가면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라도 한 듯 갑자기 시장터가 나타나 깜짝 놀라기도 한다. 원래 거리의 시장을 뜻하는 가이시街市라는 말을 이런 건물형 재래시장에도 붙일 수 있다.

 삼수이포의 페이호北河 시장 일 층은 어류와 육류, 이 층은 채소와 기타 조미료, 삼 층은 푸드코트로 이뤄져 있다. 다른 지역의 건물형 재래시장도 대부분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실내에서 고기를 썰고 생선을 뜨기 때문에 한여름엔 절로 코를 막게 될 수도 있는 건 함정. 삼 층의 푸드코트도 사실 주변의 자그마한 거리 식당을 옮겨 놓은 곳이었다. 여기엔 디지털 번호판도 없고 통합 계산대도 없었다. 원하는 점포에서 주문해 홀 한가운데 잔뜩 모인 테이블에 앉아 즐기면 그만이었다.



 골목길도 눈길을 끌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자투리 길도 홍콩 사람들은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분류되지 않은 상자, 녹슨 손수레, 퀴퀴한 쓰레기 더미가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암시장을 열어 좀 더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쥐여주기도 했다. 때로는 한 사람을 위한 간이 식당이 되기도 했고, 두 사람을 위한 흡연실이 되기도 했으며, 세 사람을 위한 도박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로와 대로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골목길이 파여있고, 그 구렁만큼 삶의 유형 또한 제각각이었다.

 너무 자주 골목길을 기웃거린 탓일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왼쪽으로 네 번을 꺾었는데 웬일인지 제자리로 돌아와 있지 않고 더 멀리 밀려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MTR 역으로 돌아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들어가고자 하면 한없이 들어가 길을 잃을 정도이지만, 빠져나오려 하면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 있는 이상한 구조의 미로 같았다. 그것이 시간이 삼수이포에 남긴 기묘한 흔적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풍기는 체취에 의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홍콩이란 도시에 머무는 동안 무언가에 홀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글/사진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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