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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12. 2017

홍콩, 포린사와 옹핑 빌리지 사이에서

사람들은 자주 고개를 들어 불상을 올려다보았다

 "가마쿠라에도 저런 게 있었어요. 어마어마하게 큰 불상이요."


 동행의 말에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저기 산 위에 있는 불상이 더 클지 가마쿠라에 있는 불상이 더 클지 말이다. 궁금증은 검색 몇 번으로 자연스럽게 풀렸다. 높이 35미터, 무게 250톤. 포린사 천단대불天壇大佛의 승리였다. 물론 홍콩섬으로 돌아가면 저 청동좌불상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건물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고층 빌딩 속으로 파묻히는 덴 이곳처럼 무려 268개에 달하는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고개가 하늘로 들렸다. 상식적인 크기를 넘어선 성자의 형상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으니, 한낱 인간으로서 그 시선을 모른 체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다 싶었다. 이윽고 산꼭대기에 걸려 있던 구름이 포린사까지 세를 벌려 불상의 머리 주변에 고였다. 구름의 크기와 형태, 바람의 불어옴과 멈춤 따위가 모두 우연에 의해 결정될까? 만약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조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차라리 여기가 현실 세계가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게 속 편한 일이었다.



 사원 앞 광장에 방목된 소만 보더라도 그랬다. 도심 한복판에서 "어, 소다."라고 말할 일이 얼마나 자주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럴싸하게 꾸며진 테마파크 옆에서 그런 말을 할 기회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그 말이 나왔다. 갈색 털에 윤기가 흐르는 소들이 지나다니는 행인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잔디를 뜯고 있었다. 소도 기르면서 잔디 관리도 하겠다는 일석이조의 계획인지 포린사와 옹핑 빌리지 일대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덧씌우기 위해서인지 그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예상을 넘어선 크기의 불상만큼 예상을 넘어선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소들은 대체로 온순했고, 폐를 끼친다고 해봤자 쓰레기통을 쓰러트리거나 사람이 먹고 있는 군것질거리를 달라고 조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문득 이 소들이 사원 소속인지 테마파크인 옹핑 빌리지 소속인지 궁금해졌는데, 아쉽게도 그건 검색으로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천단대불까지 이어지는 268개의 계단도 불상의 크기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했다. 저 계단을 오르면 부처의 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듯, 과연 세상의 모든 고통이 268번의 걸음으로 사라질 수 있을 듯 모든 것이 이성의 영역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라갈까요?"

 "저 위에 오르면 불상이 더 안 보이겠지요."


 하지만 동행과 나는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20km에 달하는 산길을 걸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된다, 호텔까지 돌아갈 체력은 남겨둬야지, 길거리에 나자빠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계단을 모두 올라도 인생에서 달라질 건 없을 거라는 체념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가 정 견딜 수 없을 때 한 가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을 오르자, 말 그대로 실낱 같은 희망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천단대불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총 12년에 걸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다. "이건 비현실적이다" 또는 "영적이다"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제작 과정 자체는 아주 치밀하고 과학적이었다. 5천 장의 스케치와 3백 건의 기술적 보고서를 검토했고, 그 완성을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5분의 1 크기의 모형을 제작했으며, 불상의 형태를 이룰 202장의 청동판은 10mm 안팎의 두께에 모양도 제각각이었음에도 설계도와의 오차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왠지 모르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부처의 머리는 단 한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머리의 무게만도 5톤이었다. 밑 작업이 끝나고 목어木魚산 정상에 세우기 전 공장에서 미리 조립을 하여 실제 건설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검토하는 리허설까지 거친 후에야 조각을 란타우 섬의 꼭대기로 옮기기 시작했다. 청동판은 중국 본토의 난징에서 제작되었다. 화물선을 통해 홍콩까지 가져오는 건 오히려 쉬운 작업이었다. 협소한 산길을 따라 불상의 머리를 운송할 땐, 트럭과 트럭 사이에 균형을 잡아줄 다른 트럭을 끼우기까지 해야 했다.


 홍콩을 대표하는 불상은 그들의 표현대로 "믿음, 종단, 예술가, 기술자, 그리고 전문가들 모두의 협력과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불상의 완성을 알리는 기념식이 열린 후부터 그 모든 기여자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모든 공을 종교적 신념에, 엄숙한 교리에, 세상에 평온과 평화를 가져오려는 영적인 의지에 돌렸다. 그래서 우린 지금 저 거대한 불상 앞에서 지식과 기술의 성취에 앞서 마음의 평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 이런 불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승려들이 바로 가마쿠라의 불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요."


 천단대불과 가마쿠라 대불의 크기를 비교했던 방금 전 일이 떠오르며, 어쩐지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크기를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는 건 말 그대로 범인凡人이나 할 일이었다.



 포린사를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옹핑 빌리지를 가로지를 때도 거대한 불상은 계속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모델하우스 같은 건물들(특히 기와가 그렇게 보이는) 사이에선 불상조차도 기념탑이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세운 캐릭터 모형으로 격하된 느낌이었다. 구름처럼 피어오른 향 연기가 자욱하던 사원에서 많이 걸어 나온 것도 아닌데 벌써 온갖 잡화점과 식당, 카페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속의 물결에 바짓단이 젖고 있었다. 이 불균형은 무엇인지, 이 이질적인 느낌은 무엇 때문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산의 가장 높은 우듬지 위로 불쑥 솟은 불상은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한가로운 소들도 옹핑 빌리지 안쪽까진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엔 그들이 뜯어먹을 풀 한 포기도 자라 있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사원이 테마 파크보다 낫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종교와 자본주의의 만남이 일으키는 묘한 부조화에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케이블카 터미널 앞에서 한 여성이 카메라를 내밀었다. 팽팽한 철선과 뻥 뚫린 하늘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대가족이었다.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화각 안에 불필요한 여백이 생기지 않을 만큼 대가족이었다. 이제 막 옹핑 빌리지에 도착한 듯한 그들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한가로운 소들, 거대한 불상과 사원, 천국으로 이어진 계단을 배경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할 것이다. 길고 오래 타는 향에 불을 붙이고 부처의 진신 사리를 친견한 후,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파인 레스토랑의 단체석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코스였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놓치거나 잃었다는 생각이 들면, 여전히 구름의 베일에 가려진 불상을 올려다보며 경외심을 되살릴 수도 있었다. 100년이 넘은 사원과 10층 건물보다 높은 불상과 연간 방문자가 160만 명이 넘는 불교 테마 마을은 혹여 있을지도 모를 우려와 거리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존하는 중이었다.


 "근데 진짜 저 소들은 뭐였을까요?"


 그리고 끝내 나는 그게 궁금했다. 압도적인 청동상과 사원 안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얼굴의 사천왕과 의외로 기와가 잘 어울리는 스타벅스의 로고를 제쳐두고, 집에 돌아가서도 그 소들을 떠올리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글/사진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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