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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Mar 13. 2017

가라쓰 사카모토야 여관 술집

걸어도 걸어도 풍경은 바다 아니면 소나무였다.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작은 술집 #7


 대마도를 가운데 두고 가라쓰唐津와 부산은 마주보는 거리가 200km밖에 되지 않는다. 부산 앞바다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가 여기 닿아 쌓인다는 항간 풍문이 그럴 듯하기도 한 게, 아주 옛날 남해에서 표류한 배가 조류를 타고 이곳에 닿았다는 기록이 꽤 남아 있다. 표류해 왔든 노를 저어 왔든 이곳에는 일찍부터 조선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두루두루 터를 잡고 살아 왔다. 차별 없는 세상 따윈 꿈에도 몰랐을 시절이니, 여기가 그나마 사람대접 받으며 연명할 수 있던 곳이었을 수도 있겠다. 거기엔 포구라는 동네의 개방성도 한몫했을 터였다. 가라쓰唐津라는 지명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던 포구라는 말에서 왔다, 아니다, 옛 삼한 땅 한韓의 독음인 ‘가라’에서 왔다, 이런저런 유래와 별개로 사람 들고 나는 데는 포구라는 동네가 민족이나 지배 집단에 구애를 덜 받는 곳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왜란이 터지고, 특히 정유년 이래 왜군이 다짜고짜 포로 포획에 열을 올리면서 포구의 개방과 포용은 깨져버리고 만다. 10만의 조선 포로가 규슈 땅에 억류되었고, 그나마 살아 잡혀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게 목숨은 진즉 조선 산야에서 날아가고 귀와 코만 베어져 바다를 넘어온 이들도 거의 20만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금까지 교토 미미즈카耳塚, 귀무덤에 묻혀 있다.

 가라쓰 성벽이 끝나는 곳에서 마이츠루舞鶴 다리를 건너 료칸이 많은 해안 마을을 지나면, 400년 된 소나무 숲, 니지노마쓰바라虹の松原의 끄트머리가 얼핏거린다. 그때야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니 가로수가 죄다 소나무다. 니지노마쓰바라는 길이가 4.5km, 폭이 500m나 되는 데다 바다와 꼭 달라붙어 있어, 이곳에 들어서면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풍경은 소나무 아니면 바다다.


바닷가에 나갈 때마다 한국 쓰레기가 있나 유심히 살펴며 걸었더랬다. 이게 정말 바다 건너 온 것일까.


나무 벽 사이사이 숲으로 들어가는 출구가 있다.


 소나무 숲 안에는 낡은 호텔이 하나 있다. 호텔 이름도 ‘니지노마쓰바라’다. 숲을 종단하는 2차선 도로에는 호텔로 가는 인도가 없어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솔밭을 걸어 찾아가야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온통 소나무와 바다뿐이니 처음엔 배를 곯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호텔 안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어 안락하고 든든한 일주일이 되겠구나, 마음이 놓였다.

 아침을 먹고 해변을 따라 한 시간 반 정도를 걸으면 숲이 끝나며 멀찌감치 기차역을 둔 마을에 닿는다. 기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는 마을이라 해변에 앉아 숨을 고르고 배가 고파지기 전에 귀로로 들어선다. 산책길을 한 시간 정도 되짚어오다 보면 도로가에 미니버스 한 대가 서 있다. 하이킹 여행객들이 꼭 들렀다 간다는 햄버거 가게다. 여기 말고 점심 먹을 곳이 없기도 하지만 버거 하나를 겨우 다 먹고, 왜 대식가가 되지 못했을까 울먹이며 벤치에 떨군 빵가루를 털어낸다.


햄버거 식당.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햄버거 버스의 유일한 좌석.


 세 시간 반의 산책을 마치고 방 안에 누워 기운을 차리면 한 건 없어도 여지없이 저녁 밥 생각이 나고 만다. 처음 이틀은 뭐라도 한 잔 곁들이자 싶어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가라쓰 역 앞 상점가엔 가라쓰 산産 도자기를 파는 가게들과 먹고 마실 가게들, 기념품 가게들이 위세 좋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문을 연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겨울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게 일본인들이 걱정하는 인구 부족의 여파일지도 모르겠다. 간판 생김으로 봐선 10년 전쯤엔 저녁마다 성시를 이루며 불을 밝혔을 법한 거리는 이제 주말인데도 서글프도록 발길이 드물었다. 그러니 어느 집이든 처마 아래 홍등을 내걸었으면 일단 들어가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

 3일째 되던 날 저녁. 버스 시간은 다 되었는데, 길 건너 사카모토라 쓰인 간판엔 대체 불이 들어 온 걸까 아닌 걸까, 가게 문을 열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버스를 포기하고 길을 건너 식당의 유리문을, 내 얼굴 크기만큼 소리 안 나게 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나이든 주방장이 TV 볼륨을 줄였다. 어디든 앉으시라. 손님은 없었다. 메뉴판에서 소라회, 오징어회를 고르고 맥주를 주문하자, 그는 카운터 위에 놓인 작은 수조에서 소라 하나를 꺼냈다. 용케 불화를 피한 청어들은 싱싱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너흰 내일 저녁이겠구나.


사카모토야.


 사카모토야 여관 식당은 주로 투숙객들의 아침과 저녁을 감당하는 곳 같았지만, 그 시간만 피하면 가라쓰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앞에 두고 넉넉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도자기와 해산물의 고장답게 질박한 그릇에 빛깔 좋은 살점들이 얹혀 나오면 평소보다 맥주 생각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곳에선 그냥 일본 소주를 마셨다. (맥주를 3000cc 이상 마신다는 계산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게 더 쌌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문제지만, 소주를 마시고 나면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사카모토야 여관 식당에 앉아 평균 60세가 넘는 사카모토야 사람들이 즐겨 보는 텔레비전을 흘끔거렸다. 언제 가냐, 가라쓰는 좋더냐, 서울은 어떻더냐. 이 접시들이 가라쓰 도자기입니까. 아무렴, 가라쓰에 왔으니 도자기나 사가시구료, 아리타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알아주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도자기가 조선 포로들이 빚어낸 거라는 말은 서로 하지 않았다. 호의는 가득하나 거리감은 또 그것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대로 사카모토야 여관의 낡은 욕조에 들어가 몸을 불리고 싶었다.


사카모토야 식당.


 외국인 노예라도 손기술만 있으면 새 신분과 이름,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유럽의 도자기 열풍을 일으켰던 이마리의 도자기, 세계 최대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아리타의 도자기, 모두가 포구에서 하역된 인간들이 빚어낸 유산이었다. 그러나 양반이건 군자건 공인이 될 싹수가 없는 이들은 별 수가 없었나 보다. 규슈 들녘 노예로 살아가든가, 대항해시대 갤리선을 타고 이역만리 노예로 팔려가든가. 루벤스 그림의 주인공이자 베니스 바다를 누빈 개성상인 안토니오 꼬레아도 왜란의 포로, 갤리선의 노예였다.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한 조선인, 일본 도공들의 조상신. 바다에 떠넘겨진 삶이란 참 다채롭기도 하구나 하다가도, 노예로 끌려와 맨몸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질곡 같은 삶이라니,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웠을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명인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의 한적하고 먼지 쌓인 뒤안길 곁에 앉자 이래서 기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소나무 숲과 바다에 발을 디디면 인생, 바다 아니면 숲이겠지, 단순하고 명쾌해지는 것도 같았다. 손재주가 없는 나는 곧 저 너머로 돌아가야 하겠는데, 낭패다, 거기 남아 살아갈 재주는 있다는 거냐. 소나무 아니면 바다라고 길은 이리도 명명백백한데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걸어도 걸어도 내 삶은 왜 꼭 한 걸음씩 늦는 걸까.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에세이 <도쿄적 일상>을 냈다.
그의 <도쿄적 일상>이 궁금하다면.
http://www.yes24.com/24/goods/30232759?scode=032&Oz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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